미국 가면 영어가 저절로 늘까
미국 가면 영어가 저절로 늘까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8.19 22: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파원 칼럼
노창현 <뉴시스 뉴욕 특파원>

자녀들이 있는 가정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해외동포들이 자녀에 대해 기울이는 정성은 매우 특별하다. 낯선 타국에서 겪는 이민 1세들의 질곡과 애환을 자녀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1세대 부모들의 헌신과 기대를 잘 알기 때문일까. 미국에서 만나는 한인 2세들은 한결 어른스럽고 참 반듯하게 자랐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데 모국에 계신 분들이 종종 착각하는 게 있다. 해외동포 자녀들이 이중언어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기 때문에 저절로 2개 국어를 한다고 생각하시지만 사실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부모가 쓰는 말이 한국말이면 한국어에 익숙하게 되고 그만큼 영어는 뒤처지게 된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거나 전학하면 집에서 쓰는 언어가 무엇인지 조사하는 양식이 있다. 집에서 외국어를 쓸 경우 아이들의 영어 학습 능력이 그만큼 뒤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미국에 온 큰 아이는 첫해 영어 정규 과목을 배우기전에 영어를 익히는 ELL(English Language Learners) 클래스를 다녔다. 어느날 부모 미팅에 참석했는데 캐나다 아이가 있다기에 어리둥절했다. ELL 교사의 설명인즉 "캐나다 퀘벡에서 온 아이인데 프랑스어를 주로 썼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부족해 함께 공부한다"고 했다. 세상에 캐나다 아이가 영어를 배워야 한다니….

알고 보니 여기서 태어난 2세, 3세들도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집에서 부모와 한국말을 하기 때문에 영어를 거의 못해 ELL반을 수년간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처음엔 정말 놀랐다. 하나의 언어를 배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자녀 교육 환경에 각별히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아이들이 제대로 학교 공부를 따라가는지 알 수 없다. 자녀 교육에 관한 한 한국보다 미국이 부모의 역할이 더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에선 사실 돈이 문제이지 자녀를 완벽한 사교육의 시스템으로 관리할 수 있다.

학교 수업이 끝나기 바쁘게 학원에 보내면 일일이 학원 버스가 태우고 갔다가 태우고 오고 방학 중에도 하루 8시간 이상 공부를 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가격도 비쌀 뿐더러 가정교사인 '튜터(Tutor)'가 주 1, 2회 한두 시간 가르치는 것이 고작이고 한국식 학원에 보낸다 해도 질과 양에서 한국의 학원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학원 버스도 한국식 학원에서나 겨우 볼 수 있는 풍경인데 이용하려 해도 월 교통비만 수백 달러라 부모가 직접 데리고 다니는 일이 대부분이다.

미국이 여성들에게 낙원이라고 한다면 남성들의 음주문화와 가부장적 분위기가 통하지 않으니까 좋다는 것이지, 대부분의 가정에선 맞벌이가 당연시되고 자녀 교육을 위해 짊어져야 하는 육체적 노력이 상당히 필요하다. 그래서 '좋았던 한국 시절'을 그리워하는 주부들도 참 많다.

자녀 교육 때문에 미국에 가겠다고 마음 먹은 분들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부모가 자녀 교육의 역할을 제대로 맡을 수 있느냐이다. 미국에 보낸다고 알아서 영어가 늘고 대학에서 공부할 수준의 교육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어떤 가족은 교육 환경이 좋다는 미국 동네에서 3년을 생활하면서 부모가 각별히 신경 썼지만 결국 자녀가 미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갔다.

어른들이야 각오를 나름 단단히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낯선 환경과 마주 해야 한다. 타의에 의해 정든 친구들, 익숙한 것과 이별을 한 아이들이 느끼는 정신적 고충은 상상보다 크다. 오죽하면 미국에 올까만은 정말 신중히 득실을 따져보고 결정을 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