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self
커피는 self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8.17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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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소천 홍현옥 <시인>
햇살이 따갑다. 그래도 말복이 지나서인지 바람이 시원한 느낌을 준다.

오래전에 읽다가 밀어 놓았던 책을 꺼내어 읽고 있는데 근처에 살고 있는 여고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상당산성에 가서 점심이나 먹자며 청국장을 맛있게 하는 집이 있다고 가자는 것이다. 시어머님 점심을 부지런히 챙겨드리고 거울을 보며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니 괜스레 콧노래가 난다. 장맛비 때문에 마음까지 눅눅하던 참이었는데 바람도 쐴겸 잘되었다 싶어 상을 치우고 상당산성으로 향했다.

며칠동안 내린 비 때문인지 거리도 깨끗하고 나무들도 생기가 도는 것이 힘이 넘쳐 보인다. 약속한 곳에 친구들이 먼저와서 재잘재잘 여고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가 한창이다. 직접 띄워서 만들었다는 청국장이 정말 구수한 게 예전 시골 외할머니께서 끓여 주던 바로 그 맛이었다. 식사가 끝나자 누군가 "커피 마실 사람" 한다. 여기저기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식당 한쪽에 있는 커피자판기에서 커피를 빼왔다.

음식점에 가면, 안내문구중, "커피는 Self 입니다~" 라는 문구가 있다. 음식점에서 식사후 후식으로 무료로 제공하는 차를 의미한다. 수정과, 식혜, 오미자차가 나오는 곳도 있고 아예, 자판기 커피를 무료로 먹을 수 있도록 한 곳도 있는데, 식후에 느끼는 입안의 텁텁함을 지우기에 커피만큼 좋은 것도 없기 때문인지 어떤 이는 커피로 숭늉처럼 입가심하는 사람도 있다.

에티켓이 뭐 중요하겠는가.

옛날의 숭늉 마시던 식문화가 현대에 맞게 개량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속 편할 테지. 숭늉과 커피가 합쳐진 퓨전 문화가 아니겠는가.

스스로 알아서 먹는다는 뜻의 'Self service'를 줄여서 'Self'만을 쓰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커피는 자아입니다" 라는 뜻이 되어 원래의 뜻과 다른 의미가 되어버린다.

커피를 마시며 자아를 발견하고 아울러 이를 실현할 수 있다면 하루에 10잔, 20잔이라도 못 마시겠는가. 아마, 커피를 많이 마신 결과로 자아발견 대신 위염이나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아는 심리의식 중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영역이기에 이를 실현할 수는 없고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자기실현'만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자아실현'이든 '자기실현'이든 자기가 원하던 것을 이룰 수만 있다면 대통령이라도 나서서 개인의 행복 추구와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커피소비를 위한 범국민 캠페인이나 대국민 담화라도 발표해야 하지 않을까.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옆테이블에 일행중 부인이 3살배기 어린 아이를 데리고 왔다. 아빠에게 앙증맞게 "자기야~ 자기야~" 부른다.

내가 쳐다보니 민망한 표정으로 아이 엄마가 남편을 부르던 소리를 듣고 따라 하는 거라고 말해준다.

미래에 심리학자가 되려는지 세살 때 이미 '자기'(Self)를 알았다는 것은 경이로움 자체가 아니겠는가.

자식 키우는 사람은 "내 아기가 천재는 아닐까"하는 착각에 산다고 한다. 이렇게 아기가 커가며 보여주는 새로운 행동발달 사항을 발견한다는 것은 나날이 새로운 생활의 즐거움일 것이다.

커피 애호가들을 살펴보면, 온갖 양념이 골고루 첨가된 다방식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첨가물 없이 묽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자판기 스타일의 커피를 좋아한다. 한번은 커피숍에서 에스프레소를 시켜 먹었는데 유배지에서 마시는 사약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 에스프레소를 경계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이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미국인들이 마시는 커피는 양말을 물에 씻은 듯 찝찔하여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바쁘더라도 한잔의 차를 마실 수 있는 여유를 갖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여러 차 중에서 커피를 마시게 된다면 한 번쯤은 자기 자신을 돌아 보도록 하자. 왜냐하면 '커피는 Self' 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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