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두차안
회두차안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8.17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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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법안스님 <논산안심정사>
몇 번의 기회가 있어서 대만을 다녀왔던 적이 있었다. 몇 곳의 유명한 곳 가운데에 하나인 자항당이란 곳이 있다. 타이베이 근교의 석지라는 곳인데 유명한 절이다. 그 절에는 자항법사의 육신이 썩지 않아서 육신보살로 모셔놓은 절이다. 그 아래에는 정수선원이란 큰 절이 있는데 그 절의 일주문에는 회두차안(回頭此岸)이라는 큼지막한 글이 써 있었다.

회두(=머리를) 차안(=사바세계)으로 머리를 돌리라고 하였다. 모두들 천당과 극락과 열반을 향할 때 외로이 차안으로 머리를 돌리는 이 있으니 지장보살님이시다. 지장보살님은 성불을 못하는 분이다. 불교에서는 성불을 못하는 존재를 일천제, 또는 천제라고 한다. 원래는 잇찬티카란 산스크리트어인데 한자말로 그렇게 표현되어 왔다.

성불 못하는 존재란 뜻이다. 즉 부처가 될 수 없는 존재란 뜻인데, '열반경'에는 "모든 존재는 성불할 수 있다"는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는 사상이다. 오악죄 즉 다섯가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어서 성불 못하는 존재가 있고, 지장보살님처럼 서원(誓願)에 의하여 성불 못하는 분이 있어서 대비천제라고 한다. 스스로의 그 머나먼 여정의 범부중생생활부터 보살의 지위에 오르시고, 또다시 완성을 눈앞에 두고, 업에 우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성불을 포기한 분이 바로 지장보살이시다.

회두차안 즉 누구든 결과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것을 목전에서 포기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마음을 비웠다.'는 이야기와 '국민의 뜻을 받든다'는 말로 번복하면서 자신과 역사에 치욕을 남기기도 했다.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불교에서는 욕심(慾心)이 아주 무서운 독(毒)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꼽는다. 정당한 의욕이 아니라, 주지 않는 것을 빼앗으려는 마음, 도둑질 하려는 마음, 자신과 가족과 남을 위해 쓰지 못하는 마음을 욕심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그동안 외형적 환경이 지구상에서 가장 쾌적한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인가 허전한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믿지 못하고, 질투와 시기가 우리 마음에 너무나 크게 자라잡고 있기 때문이다.

'못먹는 밥 재 뿌린다'는 말씀이 있다. 나 혼자 죽지 않고 같이 죽겠다는 결심들이다. 이웃만을 위해서 살라고는 못한다. 그러나 이웃과 공생하려고 하지 않으면 다 죽는 것이 역사가 증명하는 진실이 아니었던가

몇몇 주요 사건들을 보면서 몹시 씁쓸할 뿐이다. 우리는 천당이나 극락만을 찾는다. 그러나 그 천당이나 극락, 지옥은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이뤄지는 것이다. 그 선택과 그 선택을 성립시키기 위한 노력이 결부될 때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하면 된다는 것이 요즘 한국사회의 가장 큰 화두(話頭)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잘하지 않으면 잘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무더운 여름, 천당과 극락을 향하는 마음을 이 땅으로 돌려보고, 길가에 피는 코스모스가 바로 우주 자체라는 것도 한 번쯤 느껴보면 어떨까 진리나 천당이 그리 멀지만은 않게 느껴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우리 마음속에 질투와 시기를 조금이라도 희석시킨다면 굳이 천당과 극락으로 향하는 마음이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앉은 자리가 그 자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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