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 명료한 것이 좋다
간단 명료한 것이 좋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8.1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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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교의 세상만사
김익교 <전 언론인>
쏟아지는 빗소리 틈새로 매미소리가 들린다. 하기사 입추가 지났으니 찬바람 나면 그만인데 힘 있을 때 울어 일을(짝짓기)마쳐야지 날씨 따지다가는 볼장 다 보는데 맑은 날 ,비오는 날 가릴게 뭐 있나 시간이 없는데.

미국에 '레드 테이프'란 말이 있다. 지켜야 할 과정과 요인 때문에 일을 망치는 것을 비유하는 것으로 절차가 필요한 관청서류에 붉은 테이프를 붙였던 관례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 '레드 테이프'의 사례로 유명한 사건이 미공군 전투기 조종사 '조지 웰치' 중위 사건이다. 그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할 때 관제탑에서 전투명령이 내려오지 않았다고 만류하는 것을 어기고 자신의 전투기를 몰고 벌떼같이 달려드는 일본전투기들과 공중전을 벌여 무려13대나 격추시켰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세 번이나 이·착륙하면서 연료와 탄약을 보충해가며 치열한 써움을 하다 피격되어 낙하산으로 탈출했다.

기지로 구사일생한 전쟁영웅 조지 웰치를 기다리는 것은 훈장과 갈채가 아니라 군법회의였다. 죄명은 관제탑의 이륙불가 명령을 어긴 '명령없는 무단이륙'이다. 조지 웰치 중위의 무용담은 후일 영화로도 나와 미국의 경직된 관료 사회가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명분을 중시하는 우리도 레드 테이프가 비일비재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태종 때 어영장(御營將)으로 있던 김덕생(金德生) 사건이다. 김덕생은 당대의 명사수(名射手)로 북한산을 타고 내려온 맹호(猛虎)가 궁궐로 들어와 임금의 침전에 접근하자 단 한 발의 화살로 맹호를 잡았다. 자칫 호환(虎患)을 당할 뻔한 임금을 구한 것이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임금을 보호한 김덕생에게 돌아온 것은 상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조정과 유생들의 '무엄하게도 임금이 계시는 대전(大殿)을 향해 활을 쏜 것은 법도에 어긋난다'며 '김덕생을 죽음으로 다스려 기강을 잡아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결국 김덕생은 임금을 구해 놓고도 명분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죽임을 당했다.

레드 테이프는 특히 위기상황일 때 모순을 드러낸다. 일처리에는 명분도 있어야 되고 관례나 규칙, 법규와 명령도 지켜야 되지만 위기상황일 때는 이런 것들이 일을 꼬이게 하고 망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명령보다도 군인정신으로 목숨을 걸고 싸워 전공을 세운 조지 웰치나 임금의 침전을 넘보는 맹호를 활로 쏴 소임을 다한 어영장 김덕생의 사례를 들춘 것은 명분과 실리를 구분 못하는 정치가 못마땅해서다.

아직도 국민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민원부서에는 명분적인 잡다한 절차와 규칙이 국민들을 불편하고 번거롭게 하고 있다. 뽑아야 할 전봇대가 아직도 많다는 얘기다.

지금 같은 난세에는 조직을 줄이고 간결하고 신속한 의사결정과 빠른 행동이 치세(治世)에 도움을 준다. 세상도 간단명료해야 잘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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