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가 사랑에 빠졌다
요리사가 사랑에 빠졌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8.1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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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이길두 <신부 청주교구 교정사목>
여름의 한가운데 날 늦은 저녁 독일의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학센이란 요리를 시켰다. 이 요리는 독일 정통 요리인데 돼지 앞다리를 정통 맥주로 숙성시켜서 기름기가 거의 없다. 맛이 있으려니 했는데 내 입에는 너무 짜서 먹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함께 한 동무도 그리 맛있게 먹지는 않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옆자리에 한 가족이 앉았다. 잠시 메뉴를 고르더니 우리가 먹는 것을 보고 같은 것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맛이 짠데 다른 것을 먹지'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서로 눈길이 마주쳤다. 씨익 웃으면서 맛이 어떠냐고 묻기에 되지도 않은 영어로 너무 짜서 소금을 많이 넣은 것 같아 salting이라 했다 그러자 chef to fall in love 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정확한 단어로 기억되지 않아서 뜻을 음미하니 '요리사가 사랑에 빠졌다'는 말이었다.

음식이 짜다는 말을 요리사가 사랑에 빠져서 그렇다니! 어떻게 이렇게 말에다 예쁘게 장식을 할 수 있을까 음식맛이 정말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유럽 어떤 식당에서도 맛을 볼 수 없는 여유와 배려의 아름다운 참 맛을 맛보았다. 그리고 그 여운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잔잔한 감동으로 느껴진다. 돌아와 생각을 해 본다.

'요리사가 사랑에 빠졌다.' 요리사는 사랑에 빠지면 안되는 것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본연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분심, 잡념일 수도, 중요한 point를 놓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느님을 위해, 수인들을 위해, 학교 공부를 위해서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서 빠지면 안되는 것이 있다. 내가 하느님 아닌, 수인들 아닌, 공부 아닌 다른 무엇 세속주의적인 가치들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은 하느님. 하느님 나라를 잃지 않는 것이다.

'요리사가 사랑에 빠졌다' 요리사가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요리사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행여 누군가가 본질을 잃거나 중요한 것을 놓치거나, 정상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볼 때 큰 것이 아닌 소소한 것에 결함이 있을 때, 타박하고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왜 그러한지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수인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이다. 수인들이 본인의 나약함으로 인해, 사회의 구조적인 악으로 인해, 선의 결핍으로 인해 죄악에 빠지게 된 것을 이해하여야 한다. 모기를 잡아 죽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더러운 늪을 먼저 청소해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죄는 긍정할 수 없으나 죄인은 동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요리사가 사랑에 빠졌다' 요리사는 사랑에 빠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리사는 요리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져야 다음에는 더 깊고 진하고 달콤한 맛을 내는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선의 목적이 되고 이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방법이 목적에 부합할 때 선은 더 큰 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이렇게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부는 사랑에 빠져야 한다는 것이다. 신부는 요리에 빠져서는 안되고 사랑에 빠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 사랑에 빠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 사랑에 온전히 빠져야 나머지 수단이나 목적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 사랑에 빠지면 기도와 묵상, 성체조배, 사목활동 모든 것이 자리를 잃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요리에 빠지면 자칫 성과주의, 업적주의, 포장과 위선으로 목자가 아닌 삯꾼으로 쉽게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제가 하느님 사랑에 빠지면 빠질수록 신자들에게 더욱 진한 맛으로 빠져들 수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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