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의 여기자 구출 작전…우리는?
클린턴의 여기자 구출 작전…우리는?
  • 이재경 기자
  • 승인 2009.08.06 2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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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 <천안>
훤칠한 키에 검은 양복을 입고 트랩을 내려오는 모습이 꽤 멋있어 보인다. 그리고 하루 뒤 두 '인질'을 데리고 유유히 적국을 빠져나온다.

엔테베 구출작전이 영화처럼 극적이었지만 총탄과 혈흔이 난무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성공했다.

며칠 전 수행원 몇을 데리고 북한을 방문해 자국 여기자 둘을 빼내 간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 얘기다.

북미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손 치더라도, 그(클린턴의 방북과 여기자들의 석방)게 북한이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이뤄졌던 거라도 보통 부럽지가 않다.

떠올리기 싫은 일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에서부터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이 대부분 불행한 말로를 보냈거나 보내는 것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어쨌든 클린턴의 북한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백악관이 애써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미국은 그렇게 자국민을 안전하게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한 술 더 떠 클린턴은 우리의 고민거리도 북한에 전달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클린턴은 방북 때 북한에 억류된 우리나라 근로자와 연안호 선원들의 석방도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억류 중인 개성공단 근로자 유씨는 벌써 넉 달이 넘도록 체포돼 영어의 몸이 돼 있다. 그가 덮어쓴 혐의는 북한 체제 비난, 북한 여종업원에 대한 탈북책동 등이다. 3월 말에 생긴 일이니 남한에 있는 그 가족들이 지금까지 겪어온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GPS 오작동으로 원치않던 북행을 한 '800 연안호' 선원 4명도 벌써 9일째 발이 묶여 있다. 북한이 선원들의 월북 이유를 조사중이라면서 질질 끌고 있는 게 어째 쉬 해결될 문제가 아닌 듯 싶다. 아무런 의도 없이 계기 고장으로 넘어간 선원들을 뭐 조사할 게 있겠는가.

유씨가 탈북책동을 하고 체제비난을 했다는 북한측의 주장을 우리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선원들도 어떤 '저의'를 갖고 배를 몰고 북한 영해를 침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물론 북한도 알고 있을 터다.

그런데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들을 억류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정치적 압박에 그 목적이 있다.

유씨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정치권의 화살이 정부로 향하고 있다. 국회에서 클린턴의 특사 방북을 빌미로 우리도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민주당은 물론 특히 한나라당 지도부에서도 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가 다들 불만인 모양이다. 통일부는 6일 대변인을 통해 정치권의 특사 파견 검토 요구에 대해 아직 그럴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질질 끌 일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북한의 '통미봉남' 속셈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우리를 철저히 배제하고 미국과의 양자 담판을 통해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다. 클린턴을 멋있게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우리도 어떤 식으로든 창구를 터야 한다. 유씨와 연안호 선원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먼저 꺼야 함은 물론이고 이제 북한과 꼬여 있는 문제들을 풀기 위한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141일 만에 두 여기자를 데려온 오바마 대통령이 그들의 미국 안착 직후 한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두 여기자의 귀환은 당사자 가족뿐 아니라 전 미국인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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