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오염
언어 오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8.0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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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칼럼
박을석 <전교조 충북지부 교권국장>
"진실의 정부(Ministry of Truth)는 체제의 안정을 위해 필수적으로 과거를 날조하는 날이 오는데, 이것은 사랑의 정부(Ministry of Love)가 억압과 정보정치를 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의 글을 읽고 어떤 의미를 떠올리게 될까 말이나 글의 의미는 자신의 경험이나 실제 세계에 조회해 볼 때 분명해지거나 진위를 알 수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은 위의 글에서 현정부의 모습을 읽게 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정권의 역사적 뿌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역사교과서를 뜯어고치는 것을 연상할 수도 있고, 서민을 위한다는 정부가 사소한 범법을 이유로 국민들한테 무자비한 경찰의 폭력을 휘두르거나 정보기관의 조사를 받게 하는 등의 일들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인용한 글에 대해 현실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거나 언어의 논리에 민감한 사람은 위의 글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허위진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해버릴 것이다. 진실의 정부라면 과거를 날조할 리 없고 사랑의 정부라고 하면서 억압과 정보정치를 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나로 말하면 어느 쪽의 사람에 가까울까 온갖 치열한 현실에서 한 걸음 비껴나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대학원이라는 곳에서 책장이나 넘기고 있는 동안에도 대한민국에서는 날마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펼쳐진다.

21세기 민주주의가 발전된 나라라고 하는데, 아시아 인권기구가 한국의 인권 등급을 낮추라고 국제인권기구에 요구하는가 하면, 미국에서만 수백 명의 목숨을 잃게 했다는 5만 볼트의 테이저 건을 얼굴을 향해 발사하고, 발암물질이 들어있는 최루액을 뿌려대지 않는가.

법치국가를 확립하겠다고 하면서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불법이냐 아니냐를 심각하게 다투는 방식으로 법률이 만들어지고, 정부가 법률적 다툼을 예방하기 위해 만든 법률공단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 시국선언 서명을 두고 80여명을 파면 해임시키는 나라가 아닌가.

교육에 한정시킨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천만에 가까운 학생들에게 적용될 교육과정을 미래형이라고 부르면서 불과 1년 만에 뚝딱거려 밀어붙이고 있고, 시험 때문에 고통을 겪지 않게 하겠다고 대통령이 나서서 말해놓고는 그 어린이들을 시험지 풀이로 내모는 나라, 방학이라고 하면서 방학 내내 학교로 불러내어 문제풀이 학습을 시키는 나라가 대한민국 아닌가.

교사로서, 일개 시민으로서, 일개 국민으로서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나라, 말이 더 이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나라, 언어가 오염된 나라에서, 국어교육을 좀 더 잘해보고자 대학원에서 침침한 눈을 비비며 책장을 넘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자조감이 가슴을 짓누르는 요즈음이다.

그 와중에 눈에 띈 것이 조지 오웰이 1949년에 썼다는 '1984'라는 책에 담긴 위의 인용문이다. 오웰은 책에서 뉴스피크 newspeak('1984'에 나오는 전체주의 국가의 공용어)는 '무관심이 강한 것이다', '전쟁이 평화다'라고 설득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오웰의 예언이 그리 틀리지 않은 것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공부를 위하여 읽고 있는 책에는 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언어가 실은 자신들이 믿지 않는 것을 말하기 위해 쓰이면 고의적으로든 비고의적으로든 실체를 설명하기보단 감추기 위해 쓰이면 상징체계는 오염된다. 이것은 언어가 환경에 적응하거나 의사소통하는 데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인간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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