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테니커 사전이 그립다
브리테니커 사전이 그립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8.04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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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조영의 <수필가>
방학이다. 온종일 집에 있어 보니 많은 소리를 듣는다. 아침에 잠깐 울다 날아가는 새에 비해 매미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가끔 망충망으로 날아오는 경우도 있다. 가까이서 듣는 소리의 즐거움보다 바라보는 재미가 더하다. 서로를 인식하고 같이 있으면 비록 곤충일지라도 정을 느낀다.

아이들 조잘대는 소리, 자동차의 질주,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정담의 이야기도 창문이 열린 여름철에만 느낄 수 있는 소리다.

오후에는 확성기를 통한 시장의 소리가 들린다. 두부도 팔고 달콤한 참외, 신선한 생선도 있다. 못쓰는 가전제품이나 각종 고물을 찾기도 한다. 몇 번씩 반복되는 소리에 짜증이 나지만 끌려다닐수록 소란해진다. 마음을 비우면 고요하다.

며칠째 창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다 보니 기다려지는 소리도 있다. 수박장수인데 목소리도 구수하고 팔려고 하는 내용 또한 재미있다.

왔어유/ 오늘은 뭘 팔러 왔댜// 꿀수박 한통에 이천원 떨이유/ 거기다 기분이 째지면 꽁짜유//암마뚜 말구 얼릉얼릉 나와유~~//

그의 소리를 들을 때면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2000원이 없어도 된다. 기분이 좋으면 공짜로 준다니 얼마나 반가운가. 꿀수박 한 통을 거저 얻는 기분 때문에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밉지 않다.

얼마 전 부분일식을 가까이서 보고 하루하루 생성 언어가 쏟아지는 지금, 암마뚜 말구 얼릉얼릉 나오라는 말은 고향의 소리인 양 정겹다. 들을수록 오랫동안 잊고 있던 말들이 하나 둘 생각난다. 끄내끼, 한소큼, 달걀귀신, 화득불에 구운 국수 꼬랭이, 베잠방이, 새참, 봉당.

언어는 해체되고 재탄생되며 생성된다. 올해부터 기상청은 장마 예보를 하지 않았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예전같이 짧은 기간에 많은 양의 비가 아닌, 국지성 호우 형태로 내릴 가능성 때문이라고 한다. 머지않아 '장마'란 말도 생활 속에서 사라질 것 같아 서운하다.

5일장을 다니며 장사를 하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5일장도 점점 사라진다고 한다. 젊은 사람이 없고, 또 일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없어서 지금의 세대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했다. 말대로라면 사전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단어가 또 하나 더한 셈이다.

그러나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언어가 재탄생 되듯 삶의 모습도 형태만 다를 뿐 비슷한 모습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장마란 말도 시간이 흐른 뒤 형태를 바꾸어 다시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접는다.

"부엉이를 설득해 나무에서 내려오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말솜씨를 가져야 재미있는 사람이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의 말이 생각난다. 수박장수는 흙냄새 같은 언어와 말투로 마음을 움직인다. 부엉이를 설득하는 말솜씨보다 더 재치 있지 않은가.

방학이 끝나기 전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아야겠다. 컴퓨터와 핸드폰 대신 사전으로 소통하고 싶다. 브리테니커 사전에 숨어 있는 언어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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