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普施)하고 삽시다
보시(普施)하고 삽시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7.0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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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교의 세상만사
김익교 <전 언론인>
   은혜를 널리 베푸는 것을 보시(普施)라고 한다. 불경에는 보시를 포시(布施)라고 의역했지만 '널리 베푼다'는 뜻은 같아 보시로 읽힌다.

사람이 죽어 상여가 나갈 때 메기는 향두가에 여섯가지 보시가 나온다. '헐벗은 자에게 옷을 주어 구난보시 했는가. 과객을 불러 먹여 행인보시 했는가. 깊은물에 다리 놓아 월천보시 했는가. 병든사람 약을 주어 활인보시 했는가. 높은 산에 불당지어 중생보시 했는가. 목마른 사람 찬물주어 시수보시 했는가.

죽어서 저승에서 심판을 받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망자가 생전에 얼마나 자비를 베풀었는가를 묻는 형식으로 저승에서 꼭 거쳐야 할 심판조건임을 암시하기도 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보시는 우리민족의 정서가 깃든 덕목으로 조상들의 생활 속에 일습으로 되어 있을 만큼 그 사례가 많았다.

조선시대 한양의 남대문과 동대문 부근에는 그때도 노숙자들이 많았는지 지체높은 대가집에서 아침저녁으로 빈대떡을 한 수레씩 싣고나와 '아무개씨 빈자보시오'라고 외치면서 노숙자들에게 빈대떡을 던져 주었다.

또 잘나가는 마님들이 봄 가을로 홍제원, 이태원 같은 행려병자 수용소를 찾아 약과 음식을 베푸는 활인보시를 했는데 이것을 원(院)나들이라고 했다.

보시는 꼭 부자들이 많은 한양 같은 큰 지역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산촌에서도 큰고갯마루 정자나무에 먼 길 가는 나그네들이 헤진 짚신을 갈아 신을 수 있도록 짚신을 매달아 놓았다.

송나라 사신 동월이 고려를 오가며 쓴 견문기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여름에 거리에는 집집마다 문앞에 물단지를 묻어 두고 행인들에게 시원한 물을 베푸는 시수보시를 한다'고 기록돼 있을 만큼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보시의 전통이 있었다.

그러던 우리가 보시라는 말이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온갖 수단방법과 술수를 다부려 내 것이 아닌 것도 내 것으로 만들고, 남이야, 너네들이야, 죽든 말든 나만, 우리만 살면 된다는 사고(思考)가 판을 치는 비정함이 대수롭지 않은 것이 요즘 세태다.

보시, 베풀고 도와주는 보시를 행하지 못할 망정 쪽박은 깨지 말아야 되는데 이번 국회의 파행으로 실업자가 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처지는 나라가 백성이 들고 있는 동냥 바가지를 깬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고도 서로 탓만 하고, 우쭐대기도 하는 인사들의 면면은 말 그대로 국민들에게는 밥맛없는 꼬락서니요, 꼴불견이다.

이 대통령이 재산을 장학재단에 쾌척한 것은 진심이든, 정치적인 쇼든 간에 모처럼 보기 힘든 보시로 돈 많고 힘 좋은 많은 분들이 흉내라도 냈으면 좋겠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많이 가진 자가 부족한 자에게 베푸는 것도 세상 이치고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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