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로 말한다
꼬리로 말한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7.0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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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조영의 <수필가>
   동물들은 지금과 같은 꼬리를 어떻게 얻게 되었을까 하는 '앤 잉글리시'의 동화가 있다. 꼬리가 있으면 감정표현이 자유롭고 더 멋진 모습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동물들에게 사자는 꼬리를 주기로 한다.

동물의 왕 사자는 커다란 주머니에 여러 가지 꼬리를 가득 넣어와 동물들을 부른다. 말에게는 날렵한 몸과 빠른 속력에 어울리는 꼬리를 달아 준다. 멋있게 질주하는 모습을 보며 동물들은 앞을 다투어 나선다. 다람쥐에게는 작은 몸을 가려줄 귀엽고 큰 꼬리를, 귀가 긴 토끼는 솔방울만한 꼬리를 준다. 코끼리, 여우, 원숭이 각각 어울리는 꼬리를 주었다.

마지막으로 돼지가 사자 앞에 다가섰다. 동물들의 멋있는 꼬리를 보며 자신의 것도 달라고 한다. 그러나 주머니 안에는 가늘고 짧은 끈 한 개만 남았다. 돼지는 실망하며 자신의 몸에 맞지 않을 뿐더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난감한 사자는 살짝 비틀어 본다. 우스꽝스러운 돼지꼬리는 궁여지책으로 얻게 된 것을 말하고 있지만, 게으르고 나태한 행동에 일침을 준다.

사람들은 있지도 않은 것을 마치 사실인양 표현할 때 '꼬리'란 말을 쓴다.잘못을 저질러 놓고 아닌 척 시치미를 뗄 때 '꼬리를 감춘다'라고 하며, 누군가를 유혹할 때 '꼬리 친다'고 한다. 없는 것으로 유혹하는 일도 신기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현혹됨이 더욱 놀랍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속담 속에는 아무리 비밀리에 해도 옳지 못한 일을 오래 하면 결국 들키고 만다는 행동의 경계를 말한다. 사람의 얼굴 속에도 '눈꼬리', '입꼬리'가 있다. 겪지도 않고 꼬리의 형태로만 판단하는 경우이지만, '꽁지벌레'는 언행이 사나운 사람을 일컫는다. 누군가한테 정신없이 마음을 빼앗겼을 때 구미호에게 홀렸다고 하는 구미호의 꼬리는 아홉 개다.

얼마 전 사람과 유인원의 먼 조상으로 추정되는 4700만 년 전 화석이 뉴욕 미국자연사박물관에서 공개된 신문기사를 읽었다. 이 화석은 손톱, 쥘 수 있는 손, 마주 보는 엄지손가락 따위가 사람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가졌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꼬리가 꽤 길다. 말이 괜한 것은 아닌 듯싶다.

식물 중에도 꼬리를 가진 이름이 많다. '꼬리풀'은 7,8월에 보랏빛 꽃이 핀다. 작은 꽃들이 위로 솟고 끝은 아래로 쳐진 모양이 동물의 꼬리와 흡사하다. 한번 눈길을 주면 떼지 못한다. '여우꼬리'도 있다. 어른 손가락 크기만한데 붉은 빛이 무척 탐스럽다. 가만히 있어도 끌리는 것은 꼬리의 힘이다.

우리 놀이 중에 꼬리잡기 놀이처럼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꼬리를 잡기 위해서 쫓아가고 잡히지 않으려고 달아나다 보면 마음은 하나가 된다. 꽁지따기 언어놀이 속에는 우주를 담는다. 사물을 관찰하고 유추하는 상상력을 놀이로 익히며 즐겼다.

꼬리를 생각한다. 4700만 년 전, 긴 꼬리는 진화되어 없어졌지만 언어 속에는 남아서 말을 한다. 가끔은 꼬리의 말이 더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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