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식의 굿판을…
이런 가식의 굿판을…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5.25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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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집인
   죽음 앞에선 정직하다. 마지막 가는 길인데 죽는 사람도, 산 사람도 더 이상 꾸밀 이유가 없다. 그저 그대로 받아들이고 세상의 섭리에, 이치에 순응할 뿐이다.

'인간 노무현'의 죽음에 애도 물결이 넘쳐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그것이 너무 가식적이다. 고인이 살아 있을 때와 지금의 자기표현에 간극이 지나치다.

범인들은 죽음 앞에서조차 솔직하다. 속 썩이다 죽으면 "웬수 같은 놈 잘 죽었다"며 뒤늦은 화풀이를 해대고, 아깝고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면 "저승에서나 편하게 잘 살라"며 아낌없이 통곡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죽은자와 산자의 인간적인 별리를 나누는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을 놓고 수구언론과 그 맹신자들의 태도가 갑작스럽게 돌변했다.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드러내며 고인의 족적까지 치켜세운다. 너무나 부담스러운 변화다.

그러면서도 빼놓지 않고 강조하는 게 하나 있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을 저주의 굿판으로 변질시키면 안 되고, 국민화합을 위한 특단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예의 우국충정을 쏟아낸다. 하지만 저주의 굿판은 그들이 먼저 벌였고 끝내 바보 노무현이 제물로 바쳐졌다.

한번 이런 가정을 해 보자. 자기 부인이, 형이, 아들이, 딸이, 사위가, 조카 사위가, 친구가, 그 친구의 형제가, 또 그 사위가, 의형제와도 같은 후원자가, 시골 죽마고우가, 초등학교 동창이, 정치적 동반자가 한꺼번에 파렴치한 범죄 집단이 되고 줄줄이 오랏줄에 묶이는가 하면, 본인 또한 민주국가의 희망에서 졸지에 손목시계나 뇌물로 받는 시정잡배 수준의 죄인으로 추락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그에게 씌어진 의혹과 혐의의 사실여부를 떠나 노무현은 이렇게 됐다. 그가 신이 아닌 이상 그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완벽하게 꿰찰 수는 없었을 텐데도 우리는 그것을 요구했다. 혹자는 말한다. 끝까지 의연하게 대처했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전장에서 적장의 목을 치더라도 마지막 명예는 지켜주는 게 도리인데 노무현은 이런 시혜()조차 받지 못했다.

또 한 가지를 지적한다. 검찰의 책임이라고.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전직도 아닌 직전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기획과 전략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전방위로 사람들을 불러 세웠고 확인되지 않은 수사내용이 그대로 언론에 노출됐다.

그렇다면 현대판 삼족(三族)에다 그 주변인에까지 과거의 멸문지화에 버금가는 사정의 칼날을 들이댄 것이 검찰만의 책임인가. 아니다.

지난해 촛불에 사과한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고해성사를 국민들에게 들려줬다.

"캄캄한 산 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늦은 밤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수없이 제 자신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힘있는 자들이, 가진 이들이 이렇게만 했다면 미네르바 구속이나 용산 철거민 참사는 없었고, 노무현의 자진은 더더욱 없었다. 우리는 이것을 원망하며 지금 이 시간, 노무현의 영정 앞에 쏟아내는 크로코다일의 눈물을 경계하는 것이다. 이런 위선을 버리지 못하면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그의 유언은 앞으로도 외롭게 구천을 떠돌 수밖에 없다.

노무현은 갔다. 그가 신새벽의 서러운 한기(寒氣)를 고통스럽게 맞아들이며 부엉이 바위에 몸을 내던지는 순간,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악순환은 다시 유령처럼 되살아났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국민들은 이를 증오하며 오열하고 있다.

이젠 그 가식의 굿판을 걷어 치우길 바란다. 지금은 애도가 아니라 참회가 필요할 때다. 우리는 왜 이렇게밖에 안 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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