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교육청의 장학지도 시험
음성교육청의 장학지도 시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4.30 2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참교육 칼럼
박을석 <전교조 충북지부 교권국장>
박을석 <전교조 충북지부 교권국장>

"장학이가 왔다. 선생님은 예쁜 옷을 입고 오셨고 유난히 생글생글 웃으며 우리를 대하신다.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어도 혼내시지 않는다. 수업도 일찍 끝내준다. 장학이가 자주 왔으면 좋겠다."

어린이의 입을 빌린 장학지도일의 우스운(?) 풍경이다. 학교에 예쁜 옷만 입고 다닐 수도 없고, 웃는 얼굴로만 아이들을 대할 수도 없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혼내야 하고, 수업도 무턱대고 일찍 끝낼 수는 없다. 이러한 장학지도일의 가식적 모습이 많이 사라지기는 했다. 특별히 꾸미고 갖추기보다는 가급적 있는 그대로 맞이하라는 지시도 오가긴 한다. 그러나 상급 관청(교육청)의 장학지도라는 것이 단위학교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부담스럽고 힘겨운 행사이기는 매한가지다.

청소나 환경정리에 신경을 써야 하고, 공개수업 준비에 매달려야 하고, 그동안 추진했던 업무관련 실적물을 포트폴리오로 만들어야 한다. 장학일의 일정표를 만들고, 행사장을 마련해야 한다. 아이들의 학습훈련, 질서생활 등등에 대해 한 번 더 다짐을 놓아야 한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장학행사의 반복되는 고통 앞에 어느 학교라고 해서 예외는 없다. 학교에 소속된 교사로서 나도 다소 번잡하고 성가신 일들을 겪는다. 그런데 올해는 예의 그러한 일들에 더하여 한 가지 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이름하여 장학일에 보게 된 아동 학력평가였다. 내가 근무하는 이곳, 음성교육청 관내 단위학교는 장학지도 받는 날에 아이들 시험까지 본다는 것이다. 기초학력평가(받아쓰기, 기초연산 학년당 1개반)와 학업성취도평가(6학년 2개반)를 장학사가 직접 나와 관리하고 시험결과를 교육청으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지역교육청이 아동평가를 실시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가 있는지 의아할 뿐더러, 일찍이 교육행정학을 배웠고, 교단에 다년간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장학행위에 아동 시험 부과까지 포함된다는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혹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사전을 뒤적여 보아도 황당함은 가시지 않는다.

'공부나 학문을 장려함'이라는 국어사전의 정의나 '교사나 학생간의 교육 작용을 한층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지도, 조언하는 전문적인 기술봉사활동'이라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정의에서도 장학일의 아동시험 부과는 한참 멀다.

아무리 학력관리가 화급을 다투는 과제라고는 하나,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국가수준, 도교육청 수준, 학교 수준의 시험이 차고 넘치지 않는가. 함에도, 장학사가 시험을 직접 감독하고, 채점한 답안지와 결과표를 교육청으로 가져가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나마도 이 시험이라는 것이 평가목표, 평가영역, 평가내용, 평가범위, 평가방법 등에 대해 공문 한 장 없이 치러진다는 점이다. 단위학교에서 요청장학 계획서를 보고할 때 전화를 걸어 기초학력평가와 학업성취도평가 내용을 넣어서 보고하라고 지시하는 식이다.

한마디로 음성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장학일의 아동 시험은 법적, 교육행정학적 근거가 없으며, 행정의 진행절차라는 것도 준수되지 않은 막무가내 시험이라는 것이다. 하도 답답하고 어이가 없는 일이라서 수업검토회 때 장학사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 말이 전해져 담당 장학사가 성실히 대화에 응해 주었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시험치고 점수 내고, 또 시험치고 또 점수 내고. 죽도록 시험만 치른다면 도대체 공부는 언제 가르치란 말인가. 의사가 치료할 생각은 않고 진단만 되풀이 한다면 사람들은 그 의사를 뭐라고 할까. 이렇듯 오늘날 학교가, 교육청이 어리석은 의사의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