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놓친 후에
기회를 놓친 후에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4.1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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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송문숙 수필가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형제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갔다. 나에게 죽음이라는 단어는 아직도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형제들이 하나둘 유명을 달리 하는 것을 보면서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생, 그렇게 오랜 세월 사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많이 아옹다옹 살아왔다.

남편의 큰누님인 아이들 큰고모와 나는 참 힘든 사이였다. 서로의 생각차이로 많은 갈등 속에 이십여 년을 보냈다. 집안에 큰일이나 있어야 얼굴을 마주할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었다. 얼마 전 아이들 큰고모가 많이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걱정하는 남편에게 나는 젊어서부터 잔병치레가 많은 사람인데 별일 아닐 거라고 말을 해주었다.

그러던 고모가 병원에 입원을 하고 병세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문병을 갔을 때는 진통제의 힘인지 괜찮아 보였다. 자녀들 얘기를 하다가 고모는 갑자기 "나 올케가 해주는 겉절이가 먹고 싶은데." 잠시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 말의 뜻이 화해의 말같이 들렸지만 나는 그의 손을 덥석 잡아주지를 못했다. 손아래 올케에게 모든 것을 풀어버릴 기회를 주었지만, 서푼어치도 안 되는 자존심과 그동안의 섭섭했던 감정 때문인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요즘 들어 부쩍 안 좋은 내 눈 걱정이 먼저였다. 눈이 불편한 것을 핑계 삼아 문병도 한 번으로 그쳤다. 이튿날 고모가 부탁한 겉절이를 들고 남편과 나란히 같이 갔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야박하게 남편만 보냈다. 그렇게 나는 옹졸하고 따듯한 인간미가 부족했다. 오해를 풀고 용서받고 용서해야 할 그 귀중한 순간을 어리석은 나는 깨닫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십여 일 후에 고모의 부음을 들었다. 너무나 놀라고 후회하는 마음에 몸이 떨려 왔다. 죽음은 봄날의 지는 벚꽃처럼 순간 우리 앞에 다가오는데, 나는 왜 그렇게 바보같이 미련했을까 고인의 입관예절에서 마지막 모습을 보며 정말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수없이 밀려드는 후회와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살아서 하지 못한 "형님 용서하세요!" 소리를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면서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싶었다. 인생은 찰나이며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는데, 나는 왜 그렇게 마음의 빗장을 걸고 살아야 했는가 하고 많은 반성을 하였다. 이제 형제들이 하나둘 떠나가는데 남편과 나도 죽음의 서열 이 순위쯤에 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은 땅 세 평을 향하여 인생을 질주하는데 마음을 닫고 살아온 시간들이 안타깝다. 내 인생도 하루해에 비기면 석양으로 넘어 가고 있다. 저녁노을은 아름답지만 일몰이 주는 쓸쓸함은 인생의 허무를 느끼게 한다. 스산한 가을, 지는 해를 바라보며 눈물짓던 감수성 많던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나는 어느새 인생에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다. 저물어가는 인생길에서 왜 그리 용서하는 것에 인색했는지 인생을 잘못 살아 온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고인이 그렇게 아끼던 자식들, 팔순을 바라보는 고모부를 두고 훌훌 떠나가신 형님의 영면을 빌어 본다.

◈ 필진 소개

-. 충남 천안 출생.

-. 건국대학교 졸업.

-. 전국주부백일장 장원.

-. 청주 비존재동인으로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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