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안티고네, 봄의 귀환
일제고사, 안티고네, 봄의 귀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3.05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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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칼럼
오희진 <환경생명지키는 교사모임 회장>

인간의 학교를 바란다면 이명박 정부 들어 시작된 일제고사의 폐해가 이미 전국의 교육현장을 어지럽히고 있음에 영혼이 그만큼 잠식당함을 느낄 것이다. 1년 전 처음 진단평가라는 부적절한 말로 일제고사를 시행하자 이미 그 의도를 두고 (실패한) '영미식 학업성취도 평가를 한국에 적용하고자 하는 정책적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서 학생과 학교에 대한 서열 확인으로 귀결될 우려'(이윤미)를 충언했다.

또한 정책의 효과를 학습자의 삶이 아니라 국가사회의 필요를 중심으로 도구주의적으로만 파악하는 '교육철학'의 부재를 탄식하고 '건강한 인성과 미래에 대한 꿈을 갖도록 교육적 노력을 경주할 것인가, 아니면 긴장하고 경쟁하며 '석차'로 표현된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상처받는 아이들의 수가 늘어나도록 방관할 것인가'를 두고 교육 공공적 시각을 숙고하도록 촉구했다.

그 사이 한국 사회는 경제공황의 무한 고통을 빼고도 '촛불집회에서부터 드러난 대로 시민적·정치적 권리는 대폭 축소되었고, 상위 1%에 치중된 정책은 경제적·사회적 권리를 무색하게 만들었으며, 공교육과 모국어에 대한 무지한 공격으로 인해 문화적 권리 역시 땅에 떨어진 상태다. 현 정권의 본질은 여전히 탈정치정치냉소주의라고 보는 게 옳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진지한 정치담론이 나올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정치적 사안의 고비마다 거짓말, 발뺌, 왜곡, 이중어법, 자기기만으로 대응해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현 정권의 특징은 모든 것을 '부인하는' 권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진실을 부인하는 것이 자신의 사상이자 철학이 돼 버린 정권이다.'(조효제) 우리 삶을 구조적으로 지배하는 정치가 이럴진대 그중에 자율의 교육을 내세움도 거점┍ 말장난임을 뼈아프게 겪고 있다.

지난해 일제고사를 반대했다는 죄목으로 해직된 교사들을 보라. 그들은 내게 그리스비극의 주인공 '안티고네'로 보인다.

안티고네는 현대적 관점에서 시민 불복종의 정확한 사례이다. '나는 보다 근본적인 법에 충실하기 위해서 공적인 실정법을 지키지 않기로 결심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수행성을 지닌다.

죽은 오빠에게 합당한 장례를 치르게 해 달라는 요구를 통해 그는 선에 대한 지배적 사고방식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안티고네에게 있어 죽은 오빠는 '내가 목숨을 걸고 매장해야 할 의무가 있는 존재, 그 존재는 어떤 최종적인 의무, 연대, 신뢰의 존재이며, 결단코 배신하면 안 될 존재, 나의 진실성을 결단코 지켜야 할 존재'이다. 해직교사들에게 그의 학생들이 당연히 그런 존재가 아니겠는가.

3월이 되고 눈이 내려 다시 겨울 풍경을 연출했다. 교실에서 보이는 그 적설은 이미 온 봄에 쫓겨 달아나는 겨울의 다급한 몸짓일 뿐이다. 제 몸의 흔적을 숲 곳곳에 보여 엄동설한을 구하지만 어디에도 혹독한 겨울의 정취를 달갑게 여기는 이는 없다. 이 봄의 귀환이야말로 '경건한 일을 하다가 경건치 못하다는 말을 들었건만 하늘을 저버리지 않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는 안티고네의 영혼의 환생이다. 봄기운이 밀려오듯 '인간의 글로 쓰이지는 않았으나 영원한 하늘의 법을 어길 수'가 없어서 지금 여기 안티고네들이 자꾸만 늘어난다.

대신 당장 '햇빛 속에서 살아야 할 사람(학생)들을 그늘로 몰아내고 잔인하게도 산목숨(학교)을 무덤 속에 가두'는 (교육)권력자는 마침내 파멸에 이르게 될 명운이다. 그리하여 이 봄에 끊임없이 늘어난 만인의 영혼은 마지막 합창 소리에 귀를 모은다. '지혜야말로 최고의 행복. 신들에 대한 존경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 오만한 자의 호언장담은 언제든 큰 타격을 받고, 벌 받은 자는 늙어서야 현명해진다.' 안티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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