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체육 선생님
시 쓰는 체육 선생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3.0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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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반숭례 <수필가>

시를 쓰는 체육 선생님이 꿈이라는 조카가 있다. 키는 훤칠하고 생김새는 아직 소년티를 벗어나지 못한 앳된 모습의 운동선수다.

조카는 미호천이 흐르고 야트막한 야산이 병풍처럼 쳐져있는 시골 마을을 고모 손잡고 산책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산책길에 핀 들꽃 앞에서나 파란 하늘이 잠겨 있는 미호천 물 위를 한가로이 떠 있는 물오리를 보고는 감탄을 하는 아이다. 감수성이 풍부한 조카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한 편의 동시를 퍼올리듯 맑고 순수하다.

조카가 5학년이 되던 어느 날, 내게 시를 쓰는 체육 선생님이 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시를 쓰려면 체육 선생님이 아니어도 된다고 했다. 그래도 조카는 운동과 시를 다 좋아한다고 하기에, "강인함 속에 숨어 있는 부드럽고 낭만적이며 로맨틱한, 아주 최고의 체육 선생님이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초등학교 때 운동신경이 남다르게 뛰어나다 보니 주위에서 운동을 시켜 보라는 권유가 강했던가 보다. 본인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운동하는 중학교로 입학하였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운동선수로서의 기량을 보이려니 뜻대로 되지는 않고, 보이지 않는 무게감에 눌려 부상도 당하고 마음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닌 속내를 사촌형에게 털어내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연탄불에 구운 고구마 한 쟁반 들고 방으로 들어가서 공부든 운동이든 성공의 가능성은 본인인 당사자의 의지가 중요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생길 거라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운동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로 시간이 부족하여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며 시집 한 권을 빼 든다.

유년시절에 나도 글을 쓰는 언니 곁에서 '마흔이 되면 수필가가 될 것이다'라는 꿈을 꾸며 살아왔다. 마흔이란 나이를 왜 꼭 집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혼하면서 내 인생의 글을 쓴다는 일이 그저 스쳐 지나갈 헛된 꿈인 줄만 알았다. 글을 쓰겠다는 미래의 희망을 저버리지 못하고 살아오다가 우암산 삼일공원에서 열리는 여성백일장에 참가하면서 내 꿈이 실현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고 꿈도 이루었다.

엄마 따라간 백일장이 계기가 되어 시 읽기가 취미가 된 아들은 임승빈 시인의 '속초행' 시집을 몇 번 읽고 난 후 속초를 가자고 떼쓰고,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에 등장하는 시인의 아내가 잠들어 있는 청원군 가덕면 인차리를 시내버스를 타고 돌기도하는 시에 대해서는 광적인 존재다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많은 생각과 깊은 감동을 짧은 언어와 문장으로 단축된 詩들이라도 그 안에는 내용이 있어야 시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을 느끼게 된다는 사촌형의 영향 때문인지 조카는 벽에 써져 있는 시들을 모조리 외우며 뽐내기도 했었다. 고모 팔에 팔베개를 하고 시인들의 노래를 읽어가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 슬프다며 눈물까지 흘리기도 하는 조카에게 희망을 간직하고 살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꿈이 이루어진다는 고모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조카의 꿈이 한 송이 꽃처럼 부풀고 부풀어 활짝 꽃피우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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