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의 추억
일제고사의 추억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3.0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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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승환 <충북대 교수>

일제고사가 끝나면 방이 붙었다. 수백명의 석차가 펄럭이는 방을 보고, 환호작약(歡呼雀躍)하는 학생도 있었고 뒤돌아서 눈물을 훔치는 학생도 있었다. 일제히 실시하는 성적 평가가 어린 학생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줄 세우기를 좋아하고, 그 줄에 따라서 사람을 차별하기 좋아하는 세상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때 그 시절, 등수가 몇 단계 오르고 내림에 따라서 마치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담긴 것처럼 절망하고 기뻐했으니 일제고사의 추억은 칙칙하기만 하다. 그 전율의 공포를 21세기에 재현하겠다는 교육부와 교육청은 대체 어느 별에서 온 외계인들의 조직인가!

일제고사를 보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하나도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진단평가라는 미명의 일제고사는 기초 학력을 조사하여 뒤쳐진 지역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아울러 일제고사는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으며, 게으르고 나태한 학생을 부지런하게 할 수 있다는 등 하나같이 좋은 주장들뿐이다. 문제는 일제고사를 통하여 학생들의 인성은 악화되고 감성은 무디어지며 지식암기의 속도전(速度戰) 때문에 전 국민의 성적전투가 벌어지는데, 그를 위한 사교육으로 가족 전체가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핀란드에서 일제고사를 본다면 한국에서와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에서는 사회 전체가 혼란스러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그런 일은 이미 벌어졌다. 지난번의 이른바 진단평가에서 상당수의 교육청과 학교에서 성적을 왜곡하거나 조작했고 또 속였다. 한마디로 정직해야 할 학교가 부정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따라서 일제고사는 국가폭력(國家暴力)이며, 이들은 국가의 폭력에 희생당한 희생양에 불과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그것은 성적전투에서 패배하는 자는 무능한 교장, 불성실한 교육장, 수치스러운 교육감으로 낙인찍겠다고 우회적으로 천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자기 교육청의 성적 향상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교원이나 교육행정가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학생들은 그야말로 인생, 아니 가족 전체의 운명을 걸고 다른 학생을 패배시키는 전사(戰士)가 되어야 한다. 군중이 보는 앞에서 상대 검투사를 죽여야만 자기가 살 수 있는 원형경기장에서처럼 학생들이 독기(毒氣)를 뿜고 사는 세상은 사람이 사는 세상이 아니다.

일제고사 찬성자들은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시라. 지금도 죽을 지경인데 여기서 더 경쟁하고 여기서 더 싸워야 한다면 그것이 과연 사람 사는 세상인가 지배계급의 재생산이 분명한 교육전쟁의 고리를 누군가는 끊어야 하지 않겠는가 탈이라면 한국의 학부모가 너무나 극성스러워서 탈이고 학생들이 너무나 공부를 많이 해서 탈이다. 특히 억지로 공부를 한 학생들의 창의력이 없는 것이 문제이므로 더 이상 공부와 경쟁을 하라고 할 필요가 없다. 통탄스러운 것은 이기용 충북교육감께서 더 잘 아실, 인성과 감성을 파탄시킬 입시위주 교육을 조장하고 스스로 선봉장이 되어서 어린 학생들에게 채찍을 내리친다는 사실이다.

학력과 학벌을 철폐하는 것이 진정한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말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예를 들어 중앙대학 졸업생이 어떻게 서울대학 졸업생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은 학력학벌 때문에 인간적 무시를 당해도 좋다는 말인가. 결론을 말하자. 입시지옥을 조장하고, 학생들의 인격 파탄을 유도하는 일제고사는 폐지되어야 한다. 일제고사보다는 체험학습과 같은 인간교육을 통하여 창의성과 인간성을 높이는 것이 더 좋다. 교육자치(敎育自治)란 해당 교육청이 자치권을 가진다는 뜻이다. 충북교육청은 교육자치의 정신을 살려서 유익보다 무익이 크고, 효과보다 병폐가 많으며, 허다한 문제가 있는 일제고사를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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