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데이
삼겹살 데이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3.02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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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 영 희 <수필가 충북교육과학연구원 총무과장>

오늘은 3이 둘 겹치는 삼삼한 날이구나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살얼음 언 항아리 속의 동치미 맛처럼 조금은 싱거운 듯하며 맛이 있을때 어머니는 그 표현을 하곤 했다.

'삼삼하다'는 잊혀지지 않고 눈에 어리는 모습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나는 어떻게 한 어휘가 그렇게 다르게 쓰이나 항상 의문이 일었다. 그랬는데 차차 나이를 먹으면서 톡 쏘는 동치미 맛도 시원하고 잊혀지지 않는 아련한 모습도 다 좋으니 '삼삼하다'는 좋은 말이라는 생각을 한다. 너무 좋지도 너무 나쁘지도 않은 그저 무탈한 일상을 원하는 소시민의 염원이랄지.

예부터 우리 민족은 3이라는 숫자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애착을 갖고 살았다. 내기나 시합을 할 때 미련이 남아 삼세번을 한다. 어렸을 적 가위 바위 보로 무엇을 결정할 때도 꼭 삼세번을 했던 기억이 난다. 삼칠일을 지키는가 하면 삼월 삼짇날, 삼일장, 삼우제 등의 풍습을 지키고 있고 자연현상이지만 삼한사온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몇 년 전부터 3월 3일을 삼겹살데이로 정한 것은 3에 대한 기발한 착상이랄 수 있다. 구제역으로 어려워진 양돈 농가를 돕기 위한 취지이니 말이다.

밸런타인데이에는 남자가 초콜릿을 받고, 화이트데이에는 여자에게 사탕을 준다고 할 때만 해도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기억할 수도 없게 달마다 어떤 날이 생겨나면서 이건 완전히 상인들의 의도된 상혼이구나 싶었다.

그랬는데 생각도 리메이크되는지 요즘같이 경제 활성화를 위한 머리를 짜낼 때는 삼겹살데이가 신선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동지가 지나면 양(陽)이 하나 생겨나고 소한 대한을 거처 입춘에 이르면 양(陽)이 셋이 되어 삼양(三陽)이 천지에 들어차니 봄기운이 완연하다고 하여 삼월 삼짇날을 봄의 명절로 정한 세시풍속이 떠오른다.

삼월 삼짇날은 강남 갔던 제비가 박씨를 물고와 추녀 밑에 집을 짓고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동면에서 깨어 나오기 시작하는 날이라고 한다. 또한 나비나 새도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노랑나비를 보면 길하다고 하고 흰나비를 보면 상제가 된다고 하던 말이 떠오른다.

이날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하고 집 안 수리를 하기도 하는데 농경제를 행함으로써 풍년을 기원하기도 한다. 진달래꽃을 따다 화전을 부쳐 먹으며 춤을 추기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잊혀져 가고 있는 세시풍속이 되었다.

입춘 우수 등 24절기는 태양의 황도상 위치에 맞추느라 양력을 쓰면서 삼월 삼짇날을 음력으로 한 것은 오래전부터 음력을 사용했기 때문인가 본데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구온난화가 되어 4월에 나무를 심는 것이 너무 늦으니 식목일을 한 달 앞당겨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때이니 이제는 양력 3월 3일을 삼겹살데이라는 봄의 명절로 정함은 어떠한지 한다면 국적불명이라고 할지.

미리 준비한 책가방과 옷을 몇 번이나 다시 입어보며 학교가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가 엄마 손에 이끌려 입학식에 참석하고 별보기 운동을 하는 것같이 잠을 설치며 공부하던 청소년은 늠름한 대학생이 되는 날이다.

그렇게 청운의 꿈을 안고 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들과 함께 그 꿈을 키워줄 조력자들도 이동하여 새로운 조직을 구성한다. 그런 오늘 입학식을 축하하면서 아니면 새로운 조직의 단결과 화합을 위해서 삼겹살데이는 필수적인 날이라고 한다면 꿰어 맞추기라고 할지.

아니다. 뒤에서 '돼지털 본 지 오래다'고 혼잣말을 하는 것보다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불 위에 삼겹살을 맛있게 구워 먹으며 소주 한잔 권하는 것이 죄 없이 죽어간 돼지들에 대한 기본예의다.

권커니 잣커니 하면서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정담은 익어가고 삼겹살과 소주는 찰떡궁합인지 소주가 달다. 오늘은 왠지 삼삼한 밤이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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