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박구리가 가져온 이 땅의 최고장
직박구리가 가져온 이 땅의 최고장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3.02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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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 <프리랜서>

우리 주변에 참새보다 더 흔해진 새가 있다. 참새에 비해 덩치가 훨씬 크고 소리 또한 더 요란하기 때문에 그들이 있는 곳이면 참새는 찍 소리도 못하고 범접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이 새를 잘 모르고 있다. 이름뿐만 아니라 모습 역시 생소해 한다.

눈만 뜨면 자연과 접하는 농촌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 하고 도시공원을 찾은 노인들에게 물어 봐도 역시 고개를 가로 젓는다. 하지만 모두들 갑자기 수가 많아진 것 만큼은 분명히 인정한다.

우리나라 터줏대감격인 참새의 생태적 지위를 하루아침에 위협하게 된 이 새, 수백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나라 조류(鳥類) 생태계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이 새는 다름 아닌 직박구리다.

참새와 같은 참새목에 속하나 몸 길이가 28cm로 참새의 두 배나 되고 몸색깔은 전체적으로 회갈색을 띤 새다. 옛 사람들이 흔히 이 새를 '후루룩 빗죽새'라고 불렀을 정도로 우는 소리가 특이해 '삣 삣 삐이' 혹은 '삐유르르르르 삐이요' 하고 시끄럽게 우는 특징이 있다.

이 새가 어느 새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제주도나 남해안에 갔을 때 바닷가 동백나무 숲에서 '삣 삣' 거리며 요란을 떨던 새를 생각하면 된다. 이 새가 과거엔 제주도나 남해안 등지에서만 쉽게 볼 수 있었던 것은 본래 한반도의 중부 이남에서 번식하는 텃새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국내에서 발간된 조류도감을 보면 한국의 중부 이남을 비롯해 일본, 타이완, 필리핀 등지서 번식하는 남방계의 산림성 조류로 설명돼 있다.

이러한 '남쪽새'가 충청지역은 물론 경기도와 서울지역까지 우점(優占)하는 등 왜 돌연 한반도를 점령해 가고 있을까.

더욱이 점령 속도도 엄청 빠르게 말이다. 지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중부지역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새가 불과 10년 안팎에 남한지역을 완전히 그들의 텃새권으로 만들어 버렸다. 서울에서는 이미 비둘기와 까치 다음으로 많은 새가 됐다. 참새를 세 번째 순위에서 몰아낸 것이다.

우리나라의 조류도감을 전면 수정하게끔 하고 있는 이같은 현상, 국내 조류학계가 공식 논문발표도 하기 전에 전국을 뒤덮어 버린 직박구리의 대란. 이러한 일이 도대체 왜 일어나고 있을까. 이는 한마디로 이상징후다.

아니 이보다 더 뚜렷한 자연계의 최고장이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반도의 기후와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생태계까지 그 못지 않게 급속도로 변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마지막 경고장인 셈이다.

텃새는 말 그대로 계절이 바뀌어도 이동하지 않고 한 지역에 머무는 새이다. 이는 그 지역에서 나고 자라 생태와 습성이 완전히 그 지역의 기후와 환경에 맞도록 적응한 까닭이다. 그러기에 텃새가 자신의 텃새권을 넓혀나간다는 것은 그들이 살기에 적합한 기후와 환경이 그만큼 넓어졌음을 뜻하는 확실한 증거다.

다시 말하지만 직박구리는 최소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분명 남쪽에나 가야 볼 수 있었던 남방계 조류였다. 그런데 지금은 참새보다 더 가까운(?) 이웃새가 됐다. '가까운'에 물음표를 표기한 것은 그들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데 정녕 우리들은 그들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고, 그로 인해 수백 수천 년을 이어져온 우리 주변의 생태계가 완전히 딴 모양으로 변해가고 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남의 일인 양 불감증에 빠져있다.

모성애가 무척 강해 번식기엔 까치도 꼼짝 못하게 하는 억척스러움과 무엇이든 잘 먹는 탐식성의 새 직박구리, 그들이 갑작스럽게 개체수를 불려나가고 있는 이 땅의 생태계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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