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드골정치여!
아, 드골정치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2.26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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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우영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여자는 뒤쫓아가면 도망가지만 가만히 있으면 다가온다.'

이 말은 프랑스에 널리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다. 프랑스의 영원한 영웅, 프랑스 국민의 품격높은 정신의 지주이자 예술적 자존심으로까지 불리는 드골 대통령. 그는 재임동안 많은 일화와 정치적인 위대한 업적을 남긴 정치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웅변가도, 정략가도 아니다.

프랑스 제4공화국 시절 그의 향리인 '콜롱베'에서 그저 전원생활을 즐기는 망중한의 그런 은둔자 시골 사람이었다. 다만 가끔 파리로 나가 친구인 솔페리노의 사무실에 들러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줄곧 듣기만 했다.

이런 드골은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현 정부에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래도 그는 모르는 척하며 남의 얘기를 경청하는 데 만족했다. 그의 평소 철학인 "정치인은 초연함에 있어 덧붙여 신비스럽게 보여야 하는데 그 태도와 행동거지에 있어서 말과 제스처의 절약이 필요하다. 매사에 심사숙고의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권위를 높이는데 침묵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는 정신적 밑바탕이 그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 그는 "도박꾼이 판돈을 올리려면 보통 때보다 더 침착하고 냉정해 질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듯이 정치인도 그래야 한다."고 했다.

이런 차분함과 지적인 대기만성의 드골에게 드디어 권력이 돌아오게 되었다. 프랑스 전 국민이 유일하게 '드골'만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자연스럽게 펼쳐진 것이다. 그의 평소 정치철학처럼 권력이란 권력 그것에 무관심한 채 놔두는 것이다. 그리하면 그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반드시 찾아 온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통령이 된 드골은 재임동안 숱한 일화와 후사에 길이 남을 국가적, 사회적인 위업 등을 남기고, 그도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 앞에 죽음을 맞은 것이다.

죽으면서까지 역시 '아! 드골의 정치여!'라는 전 국민의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던 것이다. 죽음에 임박한 그는 유언에서 자신의 장례식엔 장엄한 행렬이나 화려한 장식이 있어서는 안되고, 외국의 고관대작들을 불러도 안된다. 내 한 줌의 육신은 고향인 콜롱베 레 되제글리즈의 조그만 교회에서 아주 간소하게 의식만을 치르어 달라고 한마디 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의 유언처럼 그의 유해는 정말 72달러짜리 보통의 통나무 관에 안치되어 향리의 푸줏간 점원, 치즈 제조업자, 농부의 손에 의해서 고향집 뒷동산 묘지로 조촐하게 향했다.

이 시기에 새삼스럽게 프랑스의 '드골정치학'을 논하는 것은 근래 각종 선거 후 영예의 당선자들에게도 이러한 위대한 드골의 청량제 같은 고고(高孤)한 정신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망중한자(忙中閑者) 한마디 거든 것이다.

일찍이 정치학자 비스마르크는 정치를 두고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가능한 것의 총체적 예술(Kunst Des Moe

glichen)"이라고. 아, 드골의 정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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