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과 밀물
썰물과 밀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2.1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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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오소희 회사원

입춘이 지났습니다. 아직 추위는 완전히 떠나지 않았지만 입춘은 왔습니다. 그 바람을 맞으며 잡풀이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마른 잔디를 헤집고 파란 싹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겨우내 누런 잔디 속에 가려 나타나지 않았던 풀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지난 여름내 잡풀과 씨름을 했습니다. 뽑아버리면 올라오고 또 뽑으면 올라오고. 드디어 어머니의 승리를 보는 듯 잡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데 이제 겨우 봄이 동네어귀에 와 있을 뿐인데 잡풀은 벌써 얼굴을 내민 것입니다. 잡풀에게 봄은 소망이었습니다. 소망이 있었기에 그 모진 잔디 속에서 뿌리를 내려 제일먼저 봄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해부터 불어 닥친 경제 위기는 새봄이 왔어도 멈출 줄을 모릅니다. 바닷물이 모두 빠져나간 썰물처럼 어느 곳 한 군데 풍요로운 곳이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런 위기는 오래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강철왕 카네기도 이러한 시기를 겪었다고 합니다. 그는 춥고 배고픈 시절. 해변에 배가 그려져 있는 그림 밑에 적힌 "반드시 밀물이 들어오리라" 라는 글귀를 보고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지금 온 나라는 흉흉한 이야기뿐입니다. 경제는 언제 회복될지 모르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고, 죄의식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흉악범의 이야기는 등을 오싹하게 합니다. 어디까지 가야 이러한 일들이 멈추게 될지 걱정스럽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새로운 소망을 붙잡습니다. 잡풀처럼, 카네기처럼. 누군가 그랬습니다. 인간은 소망을 먹고 살아간다고요. 소망이 없으면 가진 것을 다 잃지만 가진 것이 없어도 소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자기에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때입니다.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잡풀도 모진고통을 견뎌냈을 것입니다. 흙도 없는 잔디 속에서 간신히 뿌리를 내리면 뽑혀지고 , 조금 남은 뿌리를 다시 내리면 또다시 뽑혀지는 아픔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피를 토하는 아픔을 겪으며 조금씩 조금씩 땅을 점령했을 것입니다. 초봄이 오기만을 기다렸을 겁니다. 입춘이 지났지만 날씨는 겨울과 같습니다. 그러나 잔디는 사람들이 인정하는 새싹들이 따뜻한 햇살을 기다리는 동안 먼저 세상에 나왔습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올 상반기를 잘 넘기고 하반기가 되면 많은 부분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때까지 견디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내가 있는 곳이 따뜻해지도록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웃어준다면 분명 밀물은 들어오고야 말 것입니다.

오늘도 연립주택공사현장에서 언 손을 녹이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새벽 4시쯤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해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과일을 사라고 외치며 골목길을 누비는 과일아저씨도 보았습니다. 예술의전당을 견학하는 병아리떼 같은 유치원 꼬마들의 웃음도 보았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양병산을 달리는 체육고 학생들의 힘든 숨소리도 들었습니다. 이 모두는 우리의 소망이며 희망입니다.

이들이 있어 모두 잘될 것입니다. 이제 모두 빠져 나갔으니 밀물이 들어 올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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