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읽은 책 덮듯이
다 읽은 책 덮듯이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1.1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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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김영미 수필가

많은 기대와 설렘으로 다시 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 매일 뜨고 지는 태양이 새로울 것은 없지만 새해 첫 새벽의 일출은 신성하고 벅찬 희망을 담은 소망 덩어리다. 2009년 기축년 아침 해는 그 어느 때보다 밝고 눈부셨다.

새해 둘째 날, 지인으로부터 책을 선물 받았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작가의 읽고 싶던 책이다. 책을 선물 받은 기쁨은 그 어느 것보다 감동이다.

새해 들어 그동안 쌓아 놓았던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 며칠 전엔 동인지를 읽고 어제는 수필집 한 권을 읽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삶의 가치를 흔들어 깨워주는 수채화 같은 작가의 삶에 빠져, 읽는 내내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다. 책을 읽으며 좋은 글귀라든가 인용할 글귀들을 메모까지 해가면서 읽다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읽는 속도가 좀 더디다. 그러나 좀 더디면 어떠랴. 내 영혼을 살지게 하고 깊은 눈을 뜨게 해주고 때로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을. 다 읽고 난 책을 덮는 그 뿌듯함이야말로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충만한 즐거움이다.

어떤 분이 한 해를 마무리할 때 책을 다 읽고 덮을 때의 마음이라면 열심히 잘 살아온 한 해가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책을 읽고 난 후 가슴에 남는 여운과 찡한 감동의 크기는 사람마다 각각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그 뿌듯한 마음은 같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를 되돌아본다. 온통 아쉬움과 후회뿐인 한 해였다. 열심히 라는 말은 나와 관련이 적은 해였다. 내가 하는 일과 글 쓰는 일에서나 내가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마저도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으면서 늘 최고가 되고 싶었고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돈독하기만 바랐다. 내 이기심이었다.

내게 주어진 일 년이라는 또 한 권의 책을 편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다. 우연히 잘 읽히는 재미있는 책을 만났을 때처럼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날도 있으리라. 예상치 않게 가끔은 아쉽고 답답하고 시간이 아까운 재미없는 책을 읽어야 할 때도 있겠지. 그럴 때처럼 아무렇게나 책장을 넘겨 버리고 싶은 날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래도 성급함을 모르는 소처럼 유유자적하게 여유롭게 걸어가리라. 다소 느리더라도 우직하지만 근면한 소를 떠올리며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나날을 만들고 싶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사람들과의 만남에 있어서도 남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고 나로 인해 겨울 햇살처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 없다. 이런 내 진심이 누군가의 가슴속에 청안한 울림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읽은 책이 삶의 지표가 될 수 있듯이 열심히 살아온 날들이 훗날 내 삶에 빛이 되기를 기대한다. 올해는 다 읽은 책 덮듯이 그렇게 마무리 하고 싶다. 새 책을 편 내 호흡이 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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