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기획취재를 마치며
<31> 기획취재를 마치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2.2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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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강의 숨결

"달래강의 숨결은 살아있다"

개발 대상 아닌 '상생'해야할 대상
소중한 자원 인정하고 지켜나가야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이상덕기자


'달래강의 숨결'은 살아 있다. 멈춘 호흡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숨소리다. 태고적 한반도 탄생 이후부터 시작됐을 그 숨소리는 수천 수만년을 이어오는 동안 다소 박동이 깨지고 리듬을 잃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건강한 숨결을 자랑하고 있다. 보은 속리산 천왕봉서 발원해 충주시 탄금대 합수지점까지 총연장 125km를 굽이치며 흐르는 달래강(달천). 우리나라 중부권의 중요한 수원(水源)이자 젖줄인 남한강의 한 지류로서, 충북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삶의 터전으로서 고고한 물흐름은 계속되고 있고, 그 고고한 삼백리 물길 곳곳에는 예나 지금이나 고유의 숨결들이 살아 꿈틀대고 있다.

◇ 달래강의 숨결들

달래강은 우선 지역민들의 소망을 안고 흐르고 있다. 크고 작은 물줄기마다에는 어김없이 마을이 자리하고 있고 그 어귀엔 으레 서낭당이 모셔져 있다. 가는 곳마다 느티나무, 팽나무, 소나무 같은 신목(神木)들이 금줄이 쳐진 채 한두 그루쯤은 예사로 서 있고, 그 옆엔 돌무더기나 입석(立石), 장승, 당집 등이 역시 오색 헝겊을 두른 채 성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각종 동제(洞祭)가 동고사, 서낭제, 장승제, 산신제 등의 형태로 여전히 치러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증표다. 각 마을마다 전해내려오는 방식과 절차는 조금씩 다를지언정 그 목적은 한결같이 마을수호와 액운퇴치, 소원성취가 주를 이룬다. 동제의 규모는 예전에 비해 많이 축소되긴 했으나 마을 주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체로서 이 지역의 오랜 풍습이자 순수한 삶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달래강은 또 수많은 이야기(설화)를 안고 흐른다. 가는 곳마다 세월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숱한 지명 유래와 인물·유적 관련 이야기들이 인근 주민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뿌리 박은 채 전설 혹은 민담 형태로 목소리를 토해낸다. 최상류 발원샘에서부터 최하류 탄금대까지, 발을 딛는 곳마다 멈춰 서는 곳마다 할 얘기도 많고 들을 얘기도 많다. 오죽하면 달래강 명칭 유래에 얽힌 이야기만도 '정설'이 없을 만큼 갖가지요, 물줄기가 지나는 곳마다 속리천, 박대천,청천천, 가무내, 괴강, 달천과 같이 부르는 이름이 각기 달라지는 강이 곧 달래강이다.

달래강 지역엔 많은 세시풍속도 전해진다. 정월 초엔 세배와 덕담나누기, 윷놀이를 하고 대보름엔 부럼 깨물기와 더위팔기,오곡찰밥 제사지내기, 각종 풍물놀이 등을 하고 음력 이월엔 좀생이날 행사와 영등제를 통해 풍년농사를 기원한다. 또 삼월 삼짇날엔 산멕이를 통해, 사월 초파일엔 각자 절을 찾아 정성껏 치성을 드린다. 오월 단오날엔 마을단위로 놀이굿판을 열고 칠월 칠석엔 정화수 한 그릇에 무병장수를 기원한 후 백중날엔 호미씻이를 통해 일꾼들의 노고를 위로한다. 팔월 한가위엔 조상 찾아 성묘하고 시월 상달엔 안택굿과 시제를 통해 천지조상께 감사하며 동점Ŋ엔 팥죽을 쑤워 먹고 섣달 그믐날엔 촛불을 밝혀 잡귀를 몰아낸다.

지금은 이같은 세시풍속들이 많이 쇠퇴했지만 최근 다시 열리고 있는 괴산 청천의 대보름날 행사와 불정의 백중놀이 행사는 달래강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

달래강은 또 역사의 현장이다. 괴산군 청천면 후영리 농소마을의 고인돌과 칠성면 도정리의 고인돌 등 선사시대 유적을 비롯해 괴산읍 검승·제월리, 감물면 지장·창산·이담리, 충주시 이류면 문주리 등 곳곳에 남아있는 고려·조선시대 유적들 역시 달래강 사람들의 옛 숨결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달래강은 또 많은 생명체들을 보듬고 흐르고 있다. 수계 대부분이 산간지역을 흐르는 계곡형의 하천이기에 다른 수계에 비해 수질이 맑고 깨끗한 데다 주변 환경 또한 쾌적해 수많은 생명체들이 뿌리를 내리고 사는 '윤택한 삶의 보금자리'로서 독특한 생태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

◇ '상생의 해'를 떠올리자

달래강의 서쪽 분수령인 한남금북정맥에 해가 기울고 있다. 지난 1월초 사전 취재에 들어간 지 꼭 12개월 만에 처음으로 '지는 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간 삼백리 물길을 답사하면서 전혀 느껴보지 못한 석양이다.

발걸음이 무겁다. 감히 1년간의 발걸음으로, 삼백리 물길에 담긴 모든 숨결을 지면에 담고자 했던 취재팀의 당초 욕심이 문득 떠오른다. 아쉬움이 크다. 그래서
미련이 남는다. 하지만 달래강의 해는 결코 지는 해가 아니다. 떠오르는 해다. 그만큼 달래강의 숨결은 건강하다.

또 하나 분명한 게 있다. 달래강엔 마침표가 없다. 남한강과의 합수지점인 탄금대가 달래강의 종착점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니다. 시작점이다. 남한강이라는 새로운 물흐름의 시작인 것이다.

그 옛날 서해를 출발한 소금배가 한강과 남한강을 거친 후 탄금대 옆을 지나 목도나루(괴산군 불정)를 향해 새로운 출발을 했듯이 또 하나의 시작점이 바로 달래강의 종착지다.

달래강은 단순한 강이 아니다. 충북의 젖줄이자 지역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그 안에 지역의 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고 지역민들의 어릴 적 추억과 꿈, 삶의 향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또 그 품 안에는 각종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이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고 곳곳에 아름다운 절경과 명소가 깃들어 있다.

이러한 달래강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 이 시대에 남겨진 숙제를 과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그건 단 하나 '달래강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숨결의 소중함을 지역민 스스로 지켜 나가면 된다. 달래강이 단지 지역발전을 위한 '개발의 대상'이 아닌, '상생의 대상'으로서 마지막 보루가 돼야 한다.

달래강은 어느 한 지자체, 어느 한 지역의 소유물이 아니다. 유역내 각 골짜기서 흘러내린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유기체인 달래강을 이루고 있듯이 유역내 구성원들이 스스로 힘과 뜻을 합쳐 지키고 가꿔나갈 때만이 소중한 자원으로서의 달래강이 보전될 수 있는 것이다.

달래강은 흐르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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