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 문백전선 이상있다
366.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2.1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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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681>
글 리징 이 상 훈

"자네는 돌아가신 내 어머니와 무척 많이 닮았소"

"어머머! 이거 왜 이래요 혹시 저를"

가곡이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묻기가 무섭게 가전은 안고 있던 그녀를 마치 짐짝 내던지듯이 바닥에 털썩 내려놓았다.

"아이쿠!"

가곡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그녀가 떨어진 곳 위에는 푹신한 짚단들이 여러 개 포개져 있었기에 무슨 충격이나 아픔 따위를 느끼지 않았지만 어쨌든 둔부를 호되게 얻어맞은 꼴이나 마찬가지이니 그녀로서는 기분이 영 찝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부터 나를 어쩔 셈이지요"

짚단 위에 적당히 자리 잡고 앉은 가곡은 어둠 속에서 자기를 똑바로 내려다보는 가전을 무서운 눈빛으로 올려 쳐다보며 이렇게 따져 물었다.

"쉿! 자네는 이제부터 아무 소리 하지 말고 조용히 내 말을 듣기만 하시오."

가전은 단단히 주의를 주려는 듯 이렇게 말하고는 미리 준비해 놓은 듯한 차(茶) 주전자에서 차 한 잔을 가득 따라 가곡에게 건네주었다. 가곡은 마침 갈증을 느끼고 있었기에 가전이 건네주는 찻잔을 두말 않고 고맙게 받아서 홀짝홀짝 맛있게 마셔댔다. 가전은 그녀가 차를 다 마시는 걸 지켜보고 있다가 천천히 무게를 잡아가며 입을 다시 열었다.

"자네는 돌아가신 내 어머니와 무척 많이 닮은 것 같소! 그러기에 내가 더욱더 정이 끌리는 것 같고."

"어머! 저랑 많이 닮았다고요 그러면 댁의 어머니께서도 제법 한미모 하셨겠군요"

빈 찻잔을 내려놓으며 가곡이 냉소(冷笑)를 띠우며 물었다.

"어허! 자네는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듣기만 하랬지"

가전이 약간 언성을 높이며 이렇게 꾸짖자 가곡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우리 어머니는 지금 자네와 똑 같은 노비 신분이셨소. 아버님께서 전쟁 포로로 잡아오신 젊은 여자들 중에서 손수 추려내셨다 하니 당신 말마따나 한미모하는 여자였겠지요. 아버님은 어머님을 극진히 사랑하셨기에 내가 태어났고, 또 그 바람에 갈전 형님을 낳은 우리 큰 어머님께 미움을 톡톡히 받으셨다하오. 어머님께서는 큰어머님으로부터 설움을 받고 심한 매질을 당하실 적마다 어린 나를 꼭 껴안고 지금 이곳으로 몰래 들어오셔서 한참 목 놓아 우시곤 했던 것이 지금도 내 눈 앞에 선하오. 어머님은 어린 나에게 입버릇처럼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오. '얘야! 너는 절대로 여자를 좋아하는 척해서는 안 된다. 네가 여자를 좋아하여 이 집안 씨를 남기려고 했다간 죽음을 면키 어렵게 된단다. 사내구실을 전혀 못하는 것처럼 굴어야만 해! 오로지 그것만이 네가 살 수 있는 길이란다!' 어머님께서 대체 무슨 뜻으로 내게 이런 말씀을 자주하셨는지 난 처음엔 잘 몰랐소. 그러나 밤낮으로 쏟아지는 온갖 구박과 설움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께서는 오늘 밤 같이 휘영청 달이 밝은 날 커다란 오동나무 가지에 스스로 목을 매달아 돌아가시고 말았다오. 어머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던 그때 내 나이 겨우 10세. 그제야 난 어렴풋이 어머님의 말씀 속에 깊은 뜻이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소. 그리고 밤마다 몰래 어머니를 찾아와 온갖 협박을 다해가며 더러운 욕심을 채우곤 했던 자가 우리 갈전 큰형님이라는 것도 어렴풋이나마 눈치를 챘고. 아마도 어머님께서는 갈전 형님의 아기를 갖게 되자 어쩔 수 없이 그런 결심을 하셨던 것 같소."

여기까지 말을 마친 가전은 목이 타는지 차 한 잔을 급히 따라 단숨에 훌쩍 마셔버렸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저에게 왜 해주시는 거죠"

가곡이 답답하고 궁금한 듯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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