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문백전선 이상있다
365.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2.1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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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680>
글 리징 이 상 훈

"일부러 나를 찾아온 그대를 좋은 곳으로 안내하리다"

'아, 저 오동나무! 그러고 보니 그때 내가 너무 어두운 탓에 무슨 나무가 내 머리 위에 있었는지도 몰랐었네! 그나저나 이를 어쩌지 내가 저 오동나무 밑을 지나가야만 하나'

가곡은 몹시 난처한 듯 입술을 꼭 깨물며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가벼운 못대가리가 강력한 자석에 저절로 끌려가는 것처럼 그녀 자신도 모르게 오동나무 쪽을 향해 몸이 천천히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곡은 오동나무 아래에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하던 동작을 딱 멈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지금 나아가려고 하는 오동나무 바로 아래 담벼락에는 넓적한 오동잎 이파리들이 수북이 깔려있었는데 바로 그 오동잎 더미 사이에서 꼿꼿하게 머리를 쳐들고 올라와 있는 사람 손가락 같이 생긴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런데 그것은 가운데 손가락 정도의 크기였지만 사람의 손가락은 분명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을 해본다면 저것은 오동잎 이파리들로 뒤덮여 있는 담벼락 위에 홀로 자라난 한 개의 싱싱한 송이버섯 같다고나 할까

'어머머! 저, 저건.'

갑자기 가곡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온통 새빨갛게 물이 들었다. 그녀의 은밀한 경험으로 보건대 저건 자랄 만큼 다 자란 남자의 그것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 어떻게 할까 기왕지사 여기까지 힘들게 왔으니 그냥 모른 체 저걸 무시하며 그대로 나아갈까 아니면 얼른 내 몸을 돌려가지고 멀리 달아나 버릴까.

잠시 망설이던 가곡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흥! 내가 저 따위 걸 보고 무서워 발발 떨 줄로 알았나 여자라고해서 남자에게 늘 당하기만 하는 줄 아느냐고. 좋아! 나도 독한 여자야!'

은근히 오기가 난 가곡은 몹시 건방져 보이는 저 육질(肉質) 버섯()이 무슨 오두방정을 떨건 말건 간에 전혀 개의치 않고 정면 돌파하듯이 과감하게 지나쳐 버리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그녀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그 버섯()의 주인공은 수북이 쌓여진 오동잎 이파리들을 이불처럼 덮은 채로 좁은 담벼락 위에 발라당 누워있었다.

'어휴! 저걸 이빨로 콱 물어뜯어 말어 그러나 참자, 참아! 저것이 만일 그때 같은 사람 손가락이었다면 내가 결단코 용서치 않을 텐데.'

가곡은 이렇게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그 버섯을 향해 구렁이가 담 타넘어 가듯 두 눈 딱 감고 그대로 지나쳐 버리고자 했다. 그러나 발끈 성을 낸 육질 버섯이 자기 코앞으로 다가온 자물쇠 같은 것을 향해 열쇠처럼 덜컥 채워지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아래에 누워있던 가전이 오동잎 이파리들을 분연히 떨치며 상반신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가곡이 깜짝 놀라 뭐라고 외치기도 전에 가전은 그녀의 입을 손으로 살짝 틀어막으며 그녀의 귀에다 대고 이렇게 조용히 속삭였다.

"일부러 나를 찾아와 주셔서 고맙소! 내가 그대를 좋은 곳으로 안내하리다!"

말을 마치자마자 가전은 가곡의 몸을 그대로 끌어안고 담벼락 아래로 가볍게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는 마치 날랜 호랑이 같이 잽싼 동작으로 가전은 그녀를 자기 가슴에 매단 채 어둠 속을 뚫고 어딘가를 향해 급히 달려갔다.

"어머머!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이쯤해서 저를 그냥 놔두시면 안 되나요"

바닥에 떨어질까 두려워 가전의 몸을 두 손으로 꼭 붙든 채 가곡이 덜덜 떨며 물었다.

"걱정 마시오. 이제부터 내가 당신을 깍듯이 대해드릴 터이니."

가전은 이렇게 대답하며 마침내 어느 어두침침한 동굴 같은 곳으로 쑥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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