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와 치킨게임
하이닉스와 치킨게임
  • 남경훈 기자
  • 승인 2008.12.0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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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 경 훈 경제부장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이론을 '치킨게임(chicken game)'이라고 부른다. 이 게임이론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자동차 게임의 이름으로, 한밤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이다. 핸들을 꺾은 사람은 겁쟁이, 즉 치킨으로 몰려 명예롭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

그러나 어느 한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게임에서는 둘 다 승자가 되지만, 결국 충돌함으로써 양쪽 모두 자멸하게 된다. 제임스 딘(James Dean)이 주연한 1955년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 나오는 자동차 게임도 전형적인 치킨게임이다. 이 용어가 1950∼1970년대 미국과 소련 사이의 극심한 군비경쟁을 꼬집는 용어로 차용되면서 국제정치학 용어로 굳어졌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정치학뿐 아니라 여러 극단적인 경쟁으로 치닫는 상황을 가리킬 때도 즐겨 인용된다. 1950∼1980년대의 남북한 군비경쟁, 1990년대 말 이후 계속되고 있는 미국과 북한 사이의 핵문제를 둘러싼 대립 등도 치킨게임의 대표적인 예이다. 또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한이 벌이는 자존심을 건 싸움에도 이 게임이론이 적용된다. 북한이 군사분계선을 통한 육로차단, 판문점 적십자 연락대표부 폐쇄, 직통전화 단절에 이어 이달 들어서는 개성공단 부분 철수까지 이르렀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약 10여년 동안 이처럼 남북한 관계가 악화된 적이 없다. 극을 향해 치닫는 느낌이다.

그러나 치킨게임이론은 무한경쟁을 해야하는 산업현장에 더 잘 어울린다. 그중 반도체업계가 으뜸이다. 세계 반도체시장은 지난 2년 동안 공격적인 설비 투자→공급 과잉→가격 급락→채산성 악화라는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결국 D램 2위, 낸드플래시 3위인 하이닉스는 200라인 가동 중단과 함께 희망 퇴직, 인건비 절감이라는 자구책을 내놨다. 노사가 지난주 합의문을 작성하고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낸드플래시 2위 업체인 일본 도시바 역시 7년만에 생산라인 스톱과 800여명의 감원을 밝혔다. 대만 후발 주자들은 올가을부터 사실상 절반에 가까운 생산 시설을 놀리고 있다. 세계 최고의 D램, 낸드플래시 기업 삼성전자는 당장 감산, 감원은 없지만 내년 투자 축소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같은 업계의 움직임은 그동안 계속된 치킨게임이 사실상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시장 상황을 고려치 않은 경쟁적인 증설과 이에 따른 공급과잉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심은 세계 반도체업계의 피말리는 싸움 속에 하이닉스의 생존여부다. 어차피 비정한 싸움을 시작했다면 승리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하이닉스는 가슴에 손을 얹고 지역사회에 대해 한번 반성을 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이닉스는 지난 99년 빅딜이라는 아픔을 겪고 출발했다. 이후 최악의 상황 속에 채권단 관리로 기사회생했다. 당시 지역에서는 주식갖기 운동이나 정상화촉구결의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2년 전에는 증설을 놓고 이천시와 한판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지역사회와 하이닉스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바람은 이 게임에서 승리를 해야하고, 어려울수록 지역을 한번 돌아봐 달라는 것이다. 하이닉스에 대한 지역사회의 사랑이 짝사랑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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