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 문백전선 이상있다
361.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2.0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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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676>
글 리징 이 상 훈

이십년전 탈출을 시도하던 가곡은 담벼락에 막히고…

그런데 어머니를 일찍 여읜 이 '가전'은 참으로 희한한 성질을 지녔는 바, 씩씩하고 늠름하게 잘 생긴 외양과는 아주 달리 그는 어렸을 때부터 여자를 멀리하였다. 제아무리 예쁘고 상냥스럽게 구는 여자일지라도 그저 시큰둥하게 여길 뿐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으니 이를 보고 속이 타들어가는 건 갈전의 아버지였다.

'아니, 저 애가 왜 저러느냐 겉으로 보기엔 아주 말짱한 사내놈이 저토록 여자를 싫어하다니. 사내 물건이 시원찮다던가 아예 쓸모가 없다면 아예 포기라도 해보련만, 저토록 우람하고 싱싱한 걸 달고 있는 놈이니 분명 사내구실은 제대로 할 것 같고.'

갈전의 아버지는 별별 수를 다 써가지고 자기 막내아들(가전)이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만들고자 온갖 노력을 다해봤건만 번번이 실패. 심지어 그를 예쁜 처녀와 한 방 안에 가둬놓고 방문을 못질해 놓아도 별무 효과였다. 결국 갈전의 아버지는 막내아들 가전에 대한 한(恨)을 남기며 세상을 떠났는데 가전이 사내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그에게 딸을 주겠다는 사람이 나올 리 없었다. 결국 가전은 이제 거의 마흔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음에도 독신(獨身)의 몸으로 큰형(갈전)의 집에서 얹혀 지내고 있는데, 그런 그에게 유일한 취미이자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면 저 혼자 강에 나가 낚시질을 하거나 골방에 틀어박혀 앉아 바둑판을 붙잡고 스스로를 맞상대하여 바둑 두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도하땅 원리 두목의 딸 가곡이 잡혀와 가택 연금이 된 갈전에게 여자 노비로 주어진 이후 이런 가전에게 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말았으니. 그러니까 햇수로 따져 근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꽃 같은 나이에 노비의 몸이 되어 늙은이(갈전)의 성노리갯감 노릇이나 하며 여기서 한평생 굴욕적으로 살아갈 생각을 하니 가곡은 두 눈앞이 캄캄해지고 눈물이 펑펑 솟았다.

'죽든 살든 이곳을 몰래 빠져 나가자! 내가 비록 이곳 지리에 어둡긴 해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면 혹시 살아나갈 수 있는 길을 찾게 될지도 모르니.'

이렇게 결심을 한 가곡은 먹구름이 잔뜩 낀 어느 어두운 밤을 틈타 마침내 대망의 탈출을 시도했다. 엿과 볶은 쌀 등등 먹을 것과 마실 물주머니를 준비한 가곡은 무장한 하인들이 밤낮으로 지키고 있는 집 대문과 뒷문을 피해가지고 서쪽 담을 몰래 넘어가는데 일단 성공을 했다. 그러나 그녀 앞을 또다시 가로막는 기다란 담벼락이 또 있었으니.

갈전은 불구가 된 자기 몸을 노리는 자객이 몰래 숨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수없이 크고 작은 담벼락들을 자기 집 안 곳곳에 설치해 두었는데 이 집안의 웬만한 하인 하녀들조차도 담벼락들이 대체 모두 몇 개인지 조차도 모를 정도였다. 가곡은 새로 맞이한 이 기다란 담벼락 위를 말처럼 타고 올라 앉아 엉덩이를 씰룩거려가며 앞으로 살살 기어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양 허벅지가 미끈거리는 담벼락 면에 맞닿아 화끈거리는 등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이런 정도의 시련은 단단히 각오한 가곡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담벼락 중간쯤 나아갔을 때 그녀는 갑자기 하던 동작을 딱 멈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기 하복부 언저리가 뭐에 꽉 끼이는 듯한, 그러니까 쉽게 얘기해서 자기 몸 한 가운데에 커다란 대못이 끼어 박힌 양 가곡은 아예 옴싹달싹조차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게 웬일 그러나 그 의문은 곧 풀렸다. 그녀가 담벼락 윗부분을 올라타 앉은 채로 살살 나아가다 보니 돌출되어있던 자그마한 나무토막 같은 것이 본의 아니게 그녀의 은밀하고도 깊숙한 곳 안으로 자물쇠 채워지듯 갑자기 꼭 끼워지고 말았던 것이다.

'어머! 빌어먹을! 하필이면 요런 때에!'

가곡은 몹시 속이 상한 듯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 나무토막 같은 것을 손으로 빼내려다가 또다시 깜짝 놀랐다. 손가락! 그것은 단순한 나무토막이 아닌 사람의 따뜻한 손가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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