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1.2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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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교의 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김 익 교 <전 언론인>

잔뜩 낀 안개가 늦게까지 걷히지 않더니 하루 종일 날씨가 우중충합니다. 기온도 슬슬 내려가고 다시 추워지려나 봅니다. 농촌풍경이 삭막합니다.

지난주만 하더라도 들녘에 그나마 드믄드믄 푸른기를 돌게 하던 배추밭이 김장철이 지나면서 사라지자 주변이 텅빈 것 같습니다. 나뭇잎이 떨어지면서 앞산이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이웃들의 옷차림이 두꺼워졌습니다.

어제 시내를 나가는 길에 여든살이 넘으신 이웃 할머니가 콩밭에서 이삭을 줍고 계셨습니다. 평소 웃음을 잃지 않으시고 누구에게나 친절하신 싹싹하시기로 소문난 할머니이시지요.

"추운 날씨에 뭐 하세요. 감기 드시려고." 길을 멈추고 인사를 드렸더니 "응, 콩이삭 모디켜서 밥에 놔 먹으려고 꽤 많어", "그래 얼마나 모으셨어요", "이리저리 다니며 두어댓박 주웠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뭘햐, 젊은 사람들은 바뻐서 난리인데 늙었다고 틀어 백히면 못써" 운동 삼아 돌아다니면 콩도 줍고 소득도 있다는 것이지요. 평생을 농촌에서 사시면서 농사에 이골이 나신 분답게 말씀을 하시면서도 밭에 떨어진 콩꼬투리를 챙기시는 손놀림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요즘 밭에서 콩이삭을 줍겠습니까. 논에도 가보면 떨어진 벼이삭이 널려 있고 질이 좀 떨어지는 배추는 밭에 그대로 있습니다.

아끼고 절약하는 미덕 같은 습성이 몸에 배신 우리네 할머니의 모습에서 지금 눈앞에 닥쳐온 불황의 시기를 넘길 수 있는 길을 찾을 것 같았습니다.

황토방에 오신 손님들이 가시고 청소를 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반도 안먹고 버린 음식들 하며 수북한 일회용품 등이 과연 우리가 경제난을 겪고 있는 것인가를 반문하게 됩니다. 그들의 눈에는 콩이삭을 줍는 시골 할머니가 어떻게 비쳐질까 등등 치우면서도 깨끗한 기분이 들지를 않습니다.

이달내내 하루도 총소리 안나는 날이 없었는데 아직도 잡을 짐승들이 남았는지 오늘도 앞뒤 산에서 총소리가 계속 들립니다. 집 마당까지 내려오던 꿩도, 멧토끼도 볼 수가 없고 그 흔하던 멧비둘기도 드믄드믄 합니다. 총소리에 놀라 다른 곳으로 갔는지, 아니면 다 잡혔는지.

이 편지를 보신 어느 분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총소리 날 때 경찰에 신고 하시라"고. 신고 좋지요. 그러나 신고하고 경찰이 도착할 시간이면 볼장 다보고 떠난 후입니다. 경찰순찰차가 일주일에 두어번 정도 지나가기는 합니다만 별 효과 없지요.

그보다는 당국의 예방활동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같이 '금렵구역'이라고 쓴 현수막 하나 길가에 걸어 놓는 정도로는 어림없어요. 하루 포획할 수 있는 개체수를 정해 놨어도 보는 대로 쏴 잡아 차에 실어 놓고 수를 줄여 신고하면 누가 알겠습니까. 다 '눈감고 아옹'이지요. 허가 받고 총 든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는데 법적포획수량 생각합니까. 더구나 산속에서 한 마리고 열 마리고 보이기만 하면 일단 쏘고 봅니다.

오늘부터 비도 오고 눈도 온다는 예보입니다. 이제 사흘만 지나면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습니다. 올 한 해도 다 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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