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 문백전선 이상있다
353.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1.2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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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668>
글 리징 이 상 훈

"왕 앞에 가시면 처음엔 무조건 안 된다고 하십시오"

그런데, 옛말에 이르기를 사람 몸이 편안해지면 음란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왼쪽 발목을 잃어 거동이 불편한데다가 왕명에 의해 집 안에만 꼭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신세이다 보니 갈전은 하루 종일 할 일이라곤 어린 그녀와 더불어 뭘 파내거나 맞추는 놀이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고, 그러다보니 그녀는 갈전의 아이를 연달아 두서넛이나 낳게 되었다. 젊은 시절 내내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살아왔던 갈전이었지만 어린 자식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맛에 점차 익숙해져 갔고 따라서 갈전은 자기보다 무려 20여 세나 차이가 나는 어린 그녀(두목 딸)를 애지중지 사랑하게 되었다. 갈전은 사랑스런 그녀를 '가곡'이라 이름 지어 주었는데 물론 이것은 은밀한 그곳 안에 '날카로운 가시가 구부러져(曲)있다.' 혹은 그곳 안에 멋모르고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가히 곡(哭)소리가 튀어나올 만큼 아픔을 주는 여자'라는 은근한 뜻이 담겨져 있었다. 아우내 왕의 부름을 받고 급히 떠나려던 갈전은 아내 가곡을 사랑스런 눈으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물었다.

"대체 내게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자 가곡은 차분한 목소리로 갈전에게 말했다.

"제가 짐작하건대 왕께서 당신을 부르시는 이유는 전쟁을 하시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이든 당신을 새삼스럽게 왜 부르겠어요"

"으음. 그거 말 되는 말이로구먼."

갈전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당신은 아우내 왕 앞에 가서 무슨 말을 하시렵니까"

"어쨌거나 왕께서 나를 부르셨으니 내게 무슨 일을 맡기시더라도 나는 잘 해보겠노라며 말씀드릴 수밖에 더 있겠소"

"안돼요! 그러시면 절대로. 당신은 왕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처음엔 무조건 안 된다고 하시거나 너무 어려운 일이라며 부정하는 입장으로 대답을 하셔야만 한다고요"

"어허! 내가 감히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왕께 내가 그런 식으로 말씀을 드려 실망시켜드릴 바에야 내가 왜 가는가 차라리 안 가느니만 못한 것이지. 가만있자. 그런데 자네가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갈전이 화가 조금 난 듯 그러나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아내 가곡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자 아내 가곡은 차분하고 또렷또렷한 말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이 세상에는 될 일과 안 될 일이 있사옵니다. 그런데 될 일이 되는 건 그다지 신기한 일이 아니요 별로 기쁜 일이 아니겠지만, 만약에 안 될 일이 된다면 그 기쁨이 배가 되겠지요. 그러니 당신은 왕께 두 배의 기쁨을 드리기 위해서 처음엔 될 일이 안 될 일인 것처럼 말씀을 하셨다가 나중에 그것이 되도록 하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

"하지만, 왕께서 내가 정말로 자신이 없어 그런 말을 하는 줄로 아신다면 곤란한데 나를 아예 젖혀버리고 다른 사람을 중용하신다면 나로선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속절없이 놓치는 셈이 아니겠는가"

갈전이 몹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내 가곡에게 다시 물었다.

"호호호. 아마도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옵니다. 제가 장담하지요."

"뭐라고 아니 어떻게 당신이 그런 장담을"

"당신은 훌륭한 장수이긴 하지만 여자에게 약한 것이 결정적인 흠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백발이 성성해진 당신이 지금도 여자를 밝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당신의 그런 약점이 사라지고 말았으니 당신에겐 장수로서의 장점만 남은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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