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1.19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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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교의 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김 익 교 <전 언론인>

느닷없이 추워졌습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대롱거리던 가을의 끝자락이 마지막을 고하는 뚜∼욱 소리도 못내고 삭풍에 날아 갑니다.

그렇게 더웠던 여름이 가을초입까지 미적거리더니 이젠 겨울이 예고없이 치고 들어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데 뒤통수를 맞고 비틀거릴 새도 없이 물러난 가을덕에 세상이 변한 것 같습니다. 그 무엇이든 간에 서서히 무르익어 가고 오는게 순리인데 매서운 칼바람에 눈발까지 날리니 뒤숭숭합니다.

이번 주말에 날을 잡고 김장을 준비하던 아내가 갑자기 추워지자 한걱정을 합니다. 다행히 무는 뽑아 놨지만 배추밭이 염려되기 때문이지요. 가뜩이나 가물어 실하지 못한 배추가 그나마 얼어 버리면 쓸모가 없습니다.

이달 들어 시제 치렀지, 연말에 결혼하는 둘째 함 받았지, 김장해야지, 혼수준비해야지 몹씨 심란해 합니다. 어찌 안 그렇겠습니까. 이 땅의 주부, 어미들이 겪는 마음고생, 몸고생이려니 해도 마음이 애잔합니다. 제가 거든다 해도 어디 아내만 하겠습니까. 그저 하자는 대로 하는 수밖에요.

따져 보면 50대 중반이 넘은 우리나이대가 개인으로나 가정에 대소사가 많습니다. 우선 이쯤되면 대부분이 직장을 퇴직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식들 결혼하지요. 연로하신 부모님과도 사별합니다. 벌어놓은 것 없고 물려 받은 것 없으면 노후는 말 그대로 고생길입니다. 거기다 건강까지 안 좋으면 이건 그 가정 전체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이 나이때 뭐라도 해본다고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 벌렸다가 자칫 실패라도 하는 날이면 회복하기도 어렵습니다. 물론 바탕이 튼튼하고 여력이 있다면 문제가 없겠습니다만 그게 흔치가 않지요.

그렇다고 걱정많고 우울한 것만도 아닙니다.

젊음을 통틀어 쌓은 경력과 저력이 있질 않습니까. 건강 챙기면서 평소 하고 싶었던 일 있으면 능력범위에서 시도해보고 계속하는 일이 있으면 열매를 맺어야지요. 완숙미와 중후함으로 후반기를 준비해야할 중요한 시기입니다.

"내일 모레 환갑(회갑)을 앞둔 노인네도 중년도 아닌 어정쩡한 50대 후반들이여 힘들 내셔."

오늘 서울 직거래 장터로 배추, 무 등을 싣고 올라간 동네분들 추운 날씨에 고생들 많으셨을 겁니다. 학교측의 배려로 지난달 베베기 체험 하러온 온곡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우리 연꽃마을과 학부모들 간에 농산물 직거래를 하는 것이지요. 춥고 바람이 부는 한겨울 같은 밤입니다. 동편에 뜬 그믐으로 가는 빛 잃은 달이 초롱초롱한 별빛에 치여 초라해 보입니다. 늦게까지 거실에서 고추를 다듬는 아내가 매운지 기침을 합니다. 가서 거들어야겠습니다.

낮에 동파를 막기 위해 정원에 수도와 비닐하우스 급수장치를 점검하고 저녁에 올해 들어 처음으로 거실 난로에 불을 지폈습니다. 훈훈하고 따듯한 것이 좋기는 한데 내일부터 땔나무 하러 다녀야겠습니다. 이제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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