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충남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20호> 1982년 11월4일 지정
24. 충남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20호> 1982년 11월4일 지정
  • 연숙자 기자
  • 승인 2008.11.1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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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천연기념물 그 천혜의 비상
천년이 지나도 곱구나 노∼란 단풍

백제 성왕 16년 맹씨가 심었다 전해져… 수령 만큼 숱한 전설 간직

연숙자기자·생태교육연구소 터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는 수령이 약 10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23m, 가슴높이의 둘레는 8.62m로 주암리 마을 뒤쪽에 있다. 백제 성왕 16년(538)에 도읍을 부여로 옮길 때 당시 좌평 맹씨가 심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세월의 무게에 아래로 축 처진 가지.

식물 중 지구상에서 오래 동안 살아온 나무를 꼽는다면 그중 하나가 은행나무다. 충청지역에만 5개의 은행나무가 1000년의 위용을 자랑하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이러한 나무의 생태적 특성을 보여준다 하겠다. 아득한 시간을 건너온 은행나무는 가을을 노랗게 물들일만큼 넉넉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향교나 마을입구, 사찰에서 주로 만날 수 있는 나무는 숲을 이루기 보단 홀로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수 많은 열매를 품고도 스스로 싹을 틔우지 못하는 까닭에 누군가에 의해 심어졌기 때문이다.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역시 백제 성왕 16년(538)에 당시 좌평을 지낸 맹씨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나무는 주암리 큰 길에서 약 2km 이상 더 들어간 녹간마을 한 가운데에서 자란다. 시골에서도 마을 안쪽에 터를 잡고 있다보니 천연기념물에 대한 안내판도 마을표지판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평소 찾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나무는 가을 산자락을 노랗게 물들이며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어 금세 찾을 수 있었다.

길게 이어진 농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서니 넉넉한 노거수의 풍채가 한눈에 들어왔다. 주변을 독식하다시피하며 서 있는 나무는 파란 하늘에 가지를 걸쳐 놓고 유유자적하게 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했다.

큰 품이 드리워진 나무둘레에는 은행잎 모양의 안내판과 제를 지내는 제단, 그리고 몇 그루의 은행나무가 보조를 맞추듯 노랗게 익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하늘을 찌질듯한 노거수의 위상도 그러나 천년의 파고를 쉽게 넘지 못한 듯 싶다. 군데 군데 말라죽은 가지와 꿈틀대며 줄기에서 빠져나온 가지들은 축늘어진 가지를 받친 기둥과 함께 진한 세월의 무게로 다가왔다.

나무에 깃든 역사도 예사롭지 않다. 부여로 도읍을 옮기며 좌평 맹씨가 심었다는 이야기는 새로운 재건을 꿈꾸며 왕도를 옮긴 백제인들의 소원이 깃들어 있는 듯 했다. 여기에 백제와 신라, 고려가 망할 때마다 칡넝쿨이 나무를 감아 올라가는 등 재난을 겪은 이야기는 한 나라의 흥망을 나무의 삶 속에 전설로 기록하고 있음도 느껴졌다.

그런가 하면 고려시대 숭각사 주지가 암자를 지으며 대들보로 쓰기 위해 은행나무 가지를 베다 급사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당산나무 이야기로는 전국에 돌림병이 돌 때에도 영험한 나무가 지켜주어 이 마을만은 화를 면했다고 사람들은 믿고있다.

희노애락을 함께하며 마을의 수호신으로 묵묵히 천년의 자리를 지켜온 은행나무. 이제 하나 둘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며 세상의 구석으로 밀려난 느낌이지만 쉬이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대하며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묵묵히 천년간 자리를 지켜온 은행나무 밑동.

◈ "은행나무를 사람 대하듯 아꼈어"

故 이백훈 한문학자 정성다해 관리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는 한문학자 이백훈씨와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마을 토박이로 녹간마을에서 한문을 가르친 이백훈씨는 유난히 은행나무를 아꼈다고 한다. 학교도 변변치 않던 당시에 서당처럼 이용되며 마을에 배움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백훈 학자의 부인 김씨(73)는 은행나무와 할아버지의 만남을 사람 못지 않은 인연이라고 말한다.

"남편이 살아생전 얼마나 은행나무를 가꾸고 아꼈는지 몰라요. 지금은 나라에서 관리해 잘 정돈되어 있지만 당시만 해도 야산에 자라고 있었어요.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살다 24년전 갑자기 암 판정을 받고 세상을 뜨셨는데, 그 전까지 할아버지가 정성들여 관리하셨어요"

부인 김씨는 "남편에게 한문을 배운 학생 중에는 유명해진 사람들도 많다"면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해 전에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제자들이 마을입구에 남편 추모비를 세웠다"고 들려줬다.

이백훈 할아버지는 인근 마을에서도 소문난 한문 선생이었다고 한다. 노준환씨(75)는 "가난한 시절, 학생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며 배움의 길을 틔워주셨다"면서 "은행나무와 이백훈 학자와의 인연은 마을 사람들이 다 알 정도였다"고 들려줬다. 노준환씨는 은행나무에 대해서도 "사람들에게 복을 안겨주고 아들을 낳게 해준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은행나무에 소원을 빌었다"며 "마을에 초상이 나도 상여가 함부로 지나가지 않았을 만큼 신성한 나무였는데 지금은 마을에 사람이 없어 제사도 못지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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