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의 가을도 깊어간다
개성의 가을도 깊어간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08.11.11 2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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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남·북 관계에 봄이 왔나 싶더니 요즘은 냉기가 흐른다.

그럼에도 지난 6일 찾은 개성에도 가을은 깊어가고 있었다. 청주에서 맞았던 가을보다 더 진한 색으로 물들어가는 단풍과 은행잎을 보면서 개성에도 가을이 오고 가을이 깊어간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게 됐다.

충북대 학생들과 찾은 고려 500년의 역사가 숨쉬는 개성의 문화 유적지는 사실 교과서에서 본 그대로였다. 황진이와 서경덕의 애사가 전해지는 박연폭포나 정몽주가 이성계의 아들 방원에게 피살된 선죽교, 정몽주 집터인 숭양서원, 고려박물관 등 모두 그대로였다.

관광객이라야 북에 고향을 둔 노인들과 젊은 대학생, 천주교 수도자 및 신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외국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외국인들에게는 개성에서 본 석탑이나 경주에서 본 다보탑이나 그냥 비슷한 탑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남쪽에서 올라간 방문객들 눈에도 역사전문가가 아닌 이상 문화재를 바라보는 눈은 외국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대학생들과 외국인과의 큰 차이점이 발견됐다. 개성 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것이다. 관광을 마치고 외국인들은 타고 온 차로 이동하는 반면 학생들은 길건너 도로에 지나가는 아이들과 주민을 향해 말없이 손을 흔드는 광경이 자주 목격됐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지나가는 어린이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무의식적으로 손을 흔드는 그 행동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한국인이라면 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입에 달고 학창시절을 보냈던 내 눈에도 냉전보다 중요한 것이 핏줄임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석달전쯤 천주교구 대북지원팀 일을 맡고 있는 한 신부님이 냉전 상황으로 인해, 모아놓은 식량을 북한에 보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일이 생각났다.

그 신부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교류 정책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죽어가는 동포를 눈뜨고 볼 수는 없지 않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사람을 그립게 만드는 계절, 개성 주민들에게도 깊어가는 가을 정취가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 날이 오길 잠시나마 기대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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