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656>
글 리징 이 상 훈 "백주 대낮부터 왜 그리 청승맞게 울고 있소"
"하, 하지만."
그의 부하들이 조금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갈전은 장수임을 표시하는 은빛 투구와 갑주를 스스로 벗고 일반 병사의 옷으로 스스럼없이 갈아입기 시작했다. 이런 꼴을 보게 되자 부하들은 더 이상 그를 말릴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여자 생각이 너무나 간절했던 갈전은 급히 서두른 나머지 결정적인 실수 한 가지를 범하고야말았으니, 그가 장수라는 신분을 확연히 드러내 줄 수 있는 백마(白馬)를 얼떨결에 그냥 타고 갔던 것이다.
갈전이 부하가 인도하는 대로 적당한 곳에 가서 복숭아(桃) 나무 아래를 가만히 살펴보니 과연 절색의 미녀 하나가 완전히 발가벗은 몸으로 잔뜩 웅크린 채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이에 갈전의 새우눈 같이 작은 두 눈이 갑자기 빛을 발하며 황소 눈깔처럼 크게 떠졌다.
지금 저 알몸 미녀가 자기 두 손으로 보일 듯 말듯 살짝 감싸 쥐고 있는 것은 여인네 가슴에 달려있는 보드랍고 몽실몽실한 두 개의 고깃덩어리()일진대, 그것은 마침 커다란 복숭아나무와도 자연스럽게 잘 어울려 그녀의 가슴에 매달린 커다란 두 개의 복숭아처럼 보이지 않는가!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복숭아 두 쪽은 내가 두 손으로 덥석 잡아 쥐고서 이쪽저쪽 번갈아가며 혀로 싹싹 핥아 그 진 맛을 보고말리라! 그리고 저 새하얀 둔부! 내 눈엔 커다란 백도(白桃)처럼 보이는구만. 좋다! 내 저 미녀의 가슴에 달린 복숭아는 두 손과 한 치 혀로, 희고 큼지막한 아래 복숭아는 자랑스러운 내 가죽침으로 해결해 봐야지. 으흐흐.'
기분 좋은 미소를 입가에 흘리며 갈전은 자기 부하들에게 잠시 눈을 딴 데 돌리고 있으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고는 군침을 질질 흘리며 미녀가 있는 복숭아나무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러나 알몸 미녀는 갈전 장수가 저에게 다가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탱탱한 자기 두 젖가슴을 두 손으로 연신 조몰락거려가며 여전히 서럽게 울고만 있었다.
"이보시오! 백주 대낮부터 왜 그리 청승맞게 질질 짜고 있소 그러니 애꿎은 나까지도 괜히 기분이 울적해지고 또 슬퍼지지 않소이까"
갈전은 자기 딴엔 제법 부드러운 분위기를 잡아가며 알몸 미녀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그러자 머리를 풀어 제친 채 몹시 서럽게 울던 여인이 갑자기 몸을 홱 돌리는가 싶더니 자기 두 손에 제각각 움켜쥐고 있던 것을 갈전의 안면을 향해 재빨리 집어던졌다.
"아아앗!"
갈전은 여인이 집어 던진 두 개의 것 중 한 개는 간신히 피했지만 그러나 나머지 한 개를 안면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몸을 조금 비틀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 알몸 여인이 방금 전까지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있었던 것은 보드랍고 연약한 여자의 고깃덩어리()가 아닌 실제로 잘 익은 복숭아였고 따라서 이 여인은 여자가 아닌 여장(女裝)을 한 사내였다.
"죽어라 이놈!"
알몸 여인 행세를 하고 있던 사내는 바닥에 숨겨 두었던 한자 반 크기의 칼을 집어가지고 비틀거리는 갈전을 향해 잽싸게 휘둘렀다. 복숭아로 안면을 된통 얻어맞아 두 눈을 잠시 못 뜨게 된 갈전은 반사적으로 몸을 위로 솟구쳐 올리며 일단 피하려고 했지만 그러나 불행히도 복숭아 나뭇가지에 머리를 딱 부딪치고 말았다.
머리가 완전히 둘로 빠개지는 듯 찐한 아픔을 갈전이 느껴볼 사이도 없이 사내가 휘두르는 무서운 칼날이 또다시 그를 향해 날아왔다. 갈전은 가까스로 몸을 다시 피했지만, 이때 갑자기 복숭아 나무 위에서 뭔가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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