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든의 교훈
메든의 교훈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8.10.3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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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 혁 두 부국장 <영동>

미국에서는 메이저 리그 만년 꼴찌팀인 '템파베이 데블스'를 올해 월드시리즈로 이끈 조 메든 감독의 리더십이 화제다. 1998년 창단한 템파베이는 지난해까지 10차례 시즌을 보내며 무려 9번이나 지구 꼴찌를 했던 팀이다. 올해 선수 연봉 총액이 4300만달러로 메이저 리그 30개 팀 가운데 꼴찌에서 두번째다. 어찌 보면 연봉에 걸맞는 성적을 내온 셈이다.

가난한 프로팀의 선수 구성은 뻔하다. 마이너 리그에서 갓 올라온 신인 아니면 다른 팀에서 퇴출된 기량미달 선수나 퇴물들이 주종이다. 3년전 팀을 맡은 메든의 1차적 숙제는 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패배주의와 자포자기에 사로잡힌 팀의 재편을 위해 그가 먼저 한 것은 일체감 조성이었다. 그는 홈구장 감독실에 와인랙을 설치했다. 경기가 끝나면 코치와 선수들을 불러 와인을 한잔씩 권하며 소통의 창구로 활용했다. 이제는 감독이 없어도 선수들이 감독방을 휴게실처럼 들락거릴 정도가 됐다고 한다. 젊은 선수들과 흉금을 트기 위해 신세대 노래도 배워 흥얼거렸다.

그는 선수를 믿었고 그렇게 팀을 운용했다. 감독 취임 후 2년째 지구 꼴찌를 하면서도 꾸준히 선수들에게 기회를 나눠주며 의욕을 불어넣었다. 지난달 보스턴 레드삭스와 치른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에는 올해 정규시즌 다섯차례 등판 경력밖에 없는 신출내기 프라이드 선수를 마무리로 올렸다. 전문가들은 경악했지만 프라이드는 승리를 지켜냄으로써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메든이 선수들을 무한정 신뢰만 한 것은 아니다. 신뢰를 저버리는 플레이는 용납하지 않았다. 팀의 간판인 4번 타자 BJ 업튼이 내야 땅볼을 치고 1루로 천천히 달리자 곧바로 교체해버렸다. 평범한 땅볼이라 아웃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내야수가 실수할 0.01%의 가능성을 포기한 태도를 엄하게 추궁한 것이다. 그의 선수들에 대한 무한신뢰는 필벌의 원칙을 병용함으로써 결실을 일군 것이다.

경제환난을 맞아 정부가 무엇보다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위기론을 잠재우려는 고강도 처방이 잇따라 동원되고 있지만 먹혀들지 않으니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정책 입안의 책임자들이 불신받는 상황에서 정책이 신뢰를 얻기는 어렵다.

대통령과 참모들이 신뢰감으로 뭉쳐 든든한 팀워크를 갖추는 것은 칭찬할 일이다. 그러나 그 상호간의 믿음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지고 유지돼야 한다. 여론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정권 내부의 결속은 국민의 입장에서는 '상호신뢰'가 아니라 '담합'일 뿐이다.

대통령의 측근에 대한 무한신뢰는 장관이 국민들이 지켜보는 국감장에서 두눈을 부릅뜨고 상소리를 내뱉는 '안하무인'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도 무언가 인적 쇄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감사원을 비롯한 부처 내부에서조차 파열음이 터져나오고 있어 울면서 마속의 목을 친 공명의 결단 비슷한 것이라도 나와줘야 할 상황인데 말이다.

템파베이의 업튼 선수는 발빠르고 방망이 매서운 '준족호타' 소리를 들으며 올해 팀 성적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메든은 그런 선수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경기장에서 끌어냈다. 메든이 선수 연봉이 다섯배나 되는 뉴욕 양키즈까지 꺾고 팀을 월드시리즈에 진출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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