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산
칠보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0.24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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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량의 산&삶 이야기
한 규 량 <충주대 노인보건복지과 교수>

'산에 갈때는 향수를 뿌리지 말고 가라'는 칼럼을 썼던 주말에 지인과 제자들을 모아 낙가산으로 향했다.

열심히 사느라 아픈 줄도 모르고 살았던 한 제자가 '첫관문증후군(산에 오르면 첫고비에 나타나는 심한 고통이라고 필자가 명명한 말)'으로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러나 그 순간 벌이 머릿속으로 들어가 박히는 바람에 벌떡 일어났다. 팔짝팔짝 뛰는 제자를 향해 '진정을 하고 움직이지 말아야 더 쏘이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벌을 찾았다.

파마머리 웨이브 속에서 윙윙거리는 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향수는 아니었지만 '헤어스프레이' 향이 진해서 그 벌을 불러들였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산이나 벌은 있지만 낙가산 첫관문의 휴식처에는 벌집이 있으므로 조심하길 바라며 다시 한번 벌이 좋아하는 향내를 풍기지 않도록 당부한다. 다른 일행 중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는 괴산의 명산 중 하나인 칠보산엘 다녀왔다. 쌍곡휴게소에서 정상으로 올라가 떡바위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는 그리 힘들지 않은 3시간 반에서 4시간 정도의 산행이므로 초보자도 갈 수 있는 코스이기에 소개해 본다.

칠보산 입구는 단풍의 퍼레이드로 완만한 초입의 산행길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해주어 감상하기에 매우 적절했다. 마치 홍당무가 된 수줍은 아가씨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단풍잎이었다. 때마침 히말라야를 같이 등반했던 네팔의 지인들이 한국에 잠시 귀국했기에 좋은 시기에 예쁜 산을 골랐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비에 촉촉이 젖은 금주의 단풍잎은 칠보산의 이름처럼 빛내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 어느 산엘 가야 좋을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20여분을 오르다 보면 지난주까지의 가을가뭄에도 불구하고 옥색빛 선녀탕이 나온다. 이 선녀탕을 만들어 준 비너스의 샘물은 수많은 나무꾼의 가슴을 설레게 할 뿐 아니라 선녀탕에 발을 담그다 빠져들게 할 만큼 수려하다. 미사여구의 글재주가 없는 필자가 이렇게 표현을 할 정도이니 칠보산에 가보지 아니하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가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마라. 그러나 가보면 무릎을 치며 공감을 할 것이다.

한참을 평탄한 길을 걸었다. 일찍이 올라간 일행이 쉬고 있던 급경사 오르막 입구에 앉아 우리는 사과 한 입씩 베어물고 있는데 벌써 올라갔다가 하산하는 등산객이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라며 겁을 준다. 역시 그러했다. 산은 산이었다. 시작이 쉬워서 가볍게 오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그때부터 지옥의 계단 및 급경사의 바위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법 땀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배낭을 진 등 쪽이 젖어들어 등산의 맛 또한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땀이 흐르면 힘이 듦의 산물이라 생각하기보다는 몸속의 불순물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은 호계절의 산행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가뭄으로 인한 먼지가 등산화와 바짓가랑이에 뿌옇게 앉았다.

먼지를 일구어 뒷사람이 마시게 될까 봐 거리를 두어 조심스레 걷지만 오히려 흙먼지의 미끄럼을 타게 만들었다.

마지막 정상에 다다르자 바위틈에서 자라나온 낙락장송(落落長松)들이 푸른하늘 위에 자태를 드러냈다.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할 낙락장송을 상상하며 솔향을 코끝으로 음미했다. 바로 이 맛에 산에 오르지 않겠는가.

정상에서 떡바위 쪽으로 하산하는 길은 2.7km밖에 되지 않지만 그만큼 경사가 심하므로 주의를 요한다. 내리막길 역시 계곡을 낀 능선을 타고 내려가므로 계곡물 낙차에 의한 음이온 에너지와 고주파 바람소리, 새소리는 나의 뇌의 알파파 증가를 돕기에 충분히 작용했다.

이때 때를 모르는 철부지 매미 한 마리가 마지막 설움을 달래는 노래를 부르느라 목청을 돋우니 다른 가을 벌레들마저 다투어 노래한다. 이들 역시 쓸쓸하고 적막해져갈 가을산을 붙잡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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