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규 량 <충주대 노인보건복지과 교수>

배우 최진실 사망 이후 우울증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표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자신이 현재 우울증을 겪고 있으면서 우울증이라고 말하지 않던 사람이 환자임을 주변에 알리기도 하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성취감을 갖고 생활하던 나이 40의 제자가 우울증으로 인한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에 다니면서 온갖 검사를 다하고 있으나 뚜렷한 병명은 없다. 기침을 하기 시작한지 6개월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는다고 호소하며 다리통증, 두통을 곁들인 위장장애 등 종합병원이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기침약을 몇 달을 먹고도 나아지질 않는다. 집에서 요양을 하다보면 나아지겠지 생각해 휴직을 했으나 의욕이 사라져 오히려 식욕도 줄고 체중이 줄어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감추느라 대인기피증마저 생겼다.

다행히도 제자는 자신이 우울증임을 알고 있고 이를 극복하려는 마음자세를 지니고 있다. 단 우울증의 원인이 너무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 충격에서 비롯했기에 그것을 혼자 감내하기 어려울 따름인 것이다.

결혼 전에는 산악 회원으로 등산을 해왔던 제자였으나 결혼 후 직장과 육아, 자신의 학업 등으로 등산의 기회를 상실한 채 살아왔던 것이다.

제자를 밖으로 끌어내어 산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기침 소리와 가래 끓는 호흡소리가 들려왔다. 앞서가던 내가 뒤로 물러서며 천천히 쉬었다 갈 것을 제안했다.

언덕배기에서 잠시 쉬는 사이 가을산의 마른 잎이 흔들어 주는 덕분에 상쾌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흡입했다.

하나 이 친구 헐떡이던 입을 다물지 않은 채 공기를 들이마시는 바람에 그동안 참았던 기침이 폭발했다. 컹컹 가슴을 울리는 기침소리는 恨의 울림소리와도 같았다.

결국 쪼그려 앉아 기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도 함께 쪼그려 앉아 제자의 마른 등을 쓰다듬으며 위에서 아래로 쓸어 내렸다. 진정시키려는 내 마음과 내 손을 통한 나의 에너지가 전달됐는지 진정을 하기 시작했다. 뻘겋게 상기된 일그러진 얼굴이 제 모습을 찾을 무렵 사탕을 꺼내 입에 물렸다. 어릴때 잠자다 기침하던 나에게 어머니가 꿀이나 사탕을 먹였던 기억이 되살아났던 것이었다.

일주일 후 다시 산으로 데려갔다.

머리 파마도 하고 등산복도 갖춰 입고 나온 모습이 제법 자발적인 모습이었다. 과거에 산을 탔던 사람이니 우울증 치료 효과가 단번에 나타났던 것이다. 다행히 가을햇살마저 그녀의 우울증 치료에 한몫을 해 주었다.

낙가산의 숲길은 햇살을 간접적으로 받게 해 주었고 그 덕에 세라토닌 분비 촉진을 원활하게 해 주었다. 그녀의 정신적 에너지 고갈을 해소해 주는 생명의 원동력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등산을 통해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다시 기운을 찾고 등산화도 새로 장만하여 큰 산 한번 가볼 요량으로 큰 맘까지 먹게 됐으니 말이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은 여러 가지 증상이 있으나 말수가 줄고 식욕 및 체중이 현저히 줄고 표정이 없어지며 대인기피현상으로 점점 집에만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활동을 안하니 점점 아픈 곳이 많아지게 된다.

집안에서조차 꼼짝하지 않고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우울증을 의심해 볼만하다.

요즘 같은 가을엔 '계절성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해마다 이쯤 되면 찬바람과 함께 가슴이 휑한 고독감을 느끼게 되는데, 여기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가미되면 우울증이 심해지고 병적증상들이 가해진다.

인간의 외상은 의학적인 여러 도움으로 쉽게 치료가 가능하나 정신적 내상은 복잡 미묘한 감정의 상처로 치료가 어렵다. 그래서 흔히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말들 하고 있다.

우울증은 단지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 주변에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위해 나지막한 야산이라도 가을햇살이 내리쬐는 곳을 택해 걷게 해주는 마음 넉넉한 등산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