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0.0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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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교의 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김 익 교 <전 언론인>

숲속을 스쳐가는 바람에 도토리가 떨어지고 쩍 벌어진 밤송이 속에 알밤이 가을을 바라 봅니다.

어제부터 주변 숲정리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20여년 전 그저 많이만 심은면 좋은줄 알고 욕심내 잔뜩 심어 놓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키만 크게 자라 볼품이 없어 간벌로 솎아내는 작업이지요.

우리 연꽃마을의 뒷그림이 되는 동산이기도 하기에 차제에 아주 조그마한 쌈지공원으로 조성해 손님들과 주민들의 쉼터로 활용할 목적으로 착수한 사업()입니다.

굴착기까지 동원돼 옮겨심고, 잘라내고, 긁어내고 등 일거리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네요. 운신의 폭이 부자유스런 숲속에서 하는 작업이고 보니 진척도 더디고 안전사고도 우려되고요. 한그루, 한그루 내손으로 심고 강산이 두번을 넘게 변하도록 공들여 가꾼 나무들이 굉음 내고 돌아가는 기계톱날에 순시간에 잘려 나갔습니다.

이곳으로 와서 풀은 뽑아 냈어도 나무는 한그루도 안 치웠습니다. 집터를 닦을 때도 크고작은 나무들을 일일이 옮겨 심자 일 하시는 분들에게 눈총깨나 받았습니다. 아내로부터도 '그많은 나무들 다 뭐 할려고 애지중지 하느냐'는 핀잔도 많이 들었지요. 누가 뭐래도 자연 그대로가 좋아 방치하다시피 한 숲인데, 이제 그만 황토방 화목감이 됐으니 허전하기도 합니다.

비록 도시와 인접한 작은 농촌마을의 뒷동산 같은 숲이지만 훤해지는 것을 보니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하루종일 지절대는 멧비둘기 등 온갖 새들과 다람쥐, 청솔모, 멧토끼, 너구리, 고라니 등이 떠나지나 않을까 하고….

부지런한 이웃들이 벌써 들깨, 콩을 베느라 바쁜 일손을 놀립니다. 아내도 마음이 조급한지 숲 정리 작업현장에 가 있는 사이 풀동산 같은 고구마밭에서 고구마를 캐왔습니다. 예정에 없는 일이 자꾸 생겨 차일피일 미루니까 그 딱딱한 고구마 밭을 혼자 한고랑씩 캔다고 합니다. 괜히 미안하네요.

들깨도 베고 콩도 베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마음만 급하지 일이 줄지 않습니다. 더구나 "청원생명축제'에 출품한 제 첫작품이자 상품인 "약쑥베개'는 어떻게 됐는지 첫날 전시만 해놓고 가보지도 않았습니다. 담당공무원들과 자원봉사자님들이 '특별한 일이 있으면 연락할 테니 안오셔도 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어디 그렇습니까.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팔리기는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됩니다. 내일은 열일 제치고 가봐야겠습니다.

해가 많이 짧아졌습니다. 점심시간 이후 잠깐 쉬었다가 일에 탄력이 붙을만 하면 땅거미가 지고 금새 어두워집니다. 도시생활은 모르겠습니다만 농촌의 요즘은 하루가 금방입니다.

밤이슬이 차가워진다는 한로(寒露)가 지나서인지 바람이 더 차지고 날씨가 썰렁썰렁합니다. 모든분들 감기 걸리지 마시고 이 가을 건강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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