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남한강과 만나다
<20> 남한강과 만나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0.08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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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강의 숨결
◈ 합수 직전의 달래강 달래강은 남한강과 합류하기 직전 지류인 요도천과 충주천을 받아들인 후 곧바로 탄금교 아래서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앞에 보이는 다리가 1977년 준공된 탄금교이다.
남한강과 합류후 한강 향해 '새 여정'

3백리 물길 마치는 곳에 탄금대 우뚝
합수지점은 끝이 아닌 영원한 시작점


김 성 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이 상 덕 기자


충주 단월 강수욕장을 지난 달래강은 이내 달천교 밑을 흐른다. 달천교 부근은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제법 큰 나루가 있던 곳이다.

동래∼한양간 영남대로를 잇던 나루터 대신 들어선 것이 달래강(달천)의 대표적인 다리 달천교다.

영남대로 옛길은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 쪽에서 유주막거리∼충렬사∼단호사를 거쳐 이곳 달천 나루를 건넌 다음 주덕으로 이어지던 '큰 길'이다. 지금으로 치면 경부고속도로의 중간 길목인 셈이다.

현재 달천교는 두 개의 다리가 나란히 서있다. 둘 다 얼마 전 새로 놓인 2차선 다리로 서울·청주 쪽으로 가는 다리는 1990년에, 충주 시내쪽으로 들어가는 다리는 1999년에 각각 세워졌다.

예전 배가 다닐 땐 인근에 뱃사공들이 머물던 집들과 주막촌이 형성돼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 없다.

질주하는 차량들 사이로 강물을 바라보니 물흐름이 무척이나 여유롭다. 강줄기의 끝자락인 남한강과의 합류점이 얼마 남지 않아 '달래강으로서의 생(生)'에 대한 미련에서일까. 아니면 3백리 물길을 잰 몸짓으로 달려온 피곤함 때문일까.

지난 여정이 거의 대부분 산골짜기를 지나는 계류였기에 이런 모습이 낯설다. 몇 배로 넓어진 강가로는 평야가 펼쳐져 있고 그 옆으론 시가지가 '도회지 빛'을 하고 있다.

천왕봉 기슭서 발원해 속리산 골짜기를 흘러내릴 때의 거친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갓 시집 온 새색시의 수줍은 발걸음을 하고 있다.

다만 그 맑디 맑던 물빛깔은 도처에서 받아들인 인간냄새 때문인지 거무칙칙하고 물내음마저 비릿하다. 안쓰럽다.

물소리도 마냥 조용하다. 3백리 본류와 숱한 지류를 지나면서 안고 온 사연과 전설들이 무척 많기에 제법 떠들썩할 법도 한 데 더없이 잔잔하다. '달라진 물흐름'은 그렇게 조용히, 그리고 서둘지 않고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나그네의 발걸음도 미련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그간 정이 든 때문일까. 탄금대가 고구마처럼 떠있는 합류점으로 향하는 발길이 왠지 무겁다.

이제 탄금대다. 달래강 물길 답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머릿속에 되뇌 온 취재의 종착지가 아니던가. 속리산 천왕봉 발원지서 남한강 합수머리까지 물길 답사의 마침표를 찍을 때가 왔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감회가 새롭다.

하지만 탄금대는 단순한 마침표가 아니다. 오히려 달래강이 탄생시킨 방점(傍點)이라고 해야 옳을 성 싶다. 달래강의 혼과 얼이 담긴 가장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 남한강 건너편서 바라본 합수 장면 달래강은 충주 탄금대 부근서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그러나 남한강과의 합수가 끝이 아니다. 남한강과 한 몸이 된 물길은 또 다시 새로운 본류인 한강을 향해 새 여정을 시작한다. 왼쪽으로 보이는 나즈막한 구릉이 충주시민의 정서적 고향이자 자랑인 탄금대이고 오른쪽 다리가 탄금교이다.

비록 동서 방향 길이가 1km 남짓하고 남북 방향의 너비가 600m 밖에 안 되는 데다 상대고도(해발고도 106m-최저고도 65m)가 40m밖에 되지 않는, 그야말로 '작은 봉우리'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깃든 혼과 얼로 인해 달래강 전 물길을 대표하는 명승지이자 역사·교육의 장으로 우뚝 솟아있지 않은가.

우선 탄금대(彈琴臺)는 그 명칭이 전해주 듯 가야국의 악성 우륵이 1400여년 전 가야금을 타며 제자들을 가르친 곳으로 우리나라 국악의 발상지다. 또 탄금대는 신립장군이 임진왜란때 천추의 한을 품고 장열하게 최후를 마친 전적지이며 일제강점기때 소설과 시로써 민족정기를 일깨운 독립유공자 권태응선생의 '감자꽃' 노래비가 있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탄금대는 곧 충주시민들의 정서적 고향이자 자랑이다. 그런 탄금대가, 그를 낳은 달래강이 이제 막 '달래강으로서의 생'을 마감하려는 곳에 위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니 필연이다.

그 필연은 특히 강 건너편, 즉 금가면 쪽에서 바라보면 더욱 실감한다. 그것은 바로 달래강이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게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임을 비로소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분명 눈앞에 펼쳐진 합수 광경은 달래강이 남한강과 한 몸이 되어 새로운 본류인 한강을 향해 새 여정을 시작하는 출발점인 것이다. 새로운 출발, 새로운 물흐름을 시작하는 곳에 탄금대는 그렇게 필연으로 서 있다.

생각의 초점을 과거 소금배와 세곡선이 다니던 시절로 되돌려 본다. 남한강을 거슬러 온 당시 뱃사공들은 이곳 합수머리를 거쳐 달래강으로 올랐을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곳이 바로 달래강 뱃길의 시작점임을 뜻하는 것 아닌가.

당시의 뱃길은 소금과 같은 해산물의 유입 통로 내지 세곡의 운반로였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외부의 소식이나 문화가 유입된 '소통의 길'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3백리 물길을 함께 해온 나그네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달래강이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합수지점 탄금대는 끝이 아닌 영원한 시작점이란 것을.
탄금대에 세워진 악성 우륵선생 추모비.
권태응 시인의 '감자꽃' 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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