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달래강의 이름으로
<19> 달래강의 이름으로
  • 김성식 기자
  • 승인 2008.10.01 1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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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강의 숨결

허리 잘린 수주팔봉 칼바위 팔봉마을 앞의 칼바위 폭포는 농지개간을 위해 허리가 잘려져 나간 칼바위의 눈물이다. 본래 팔봉마을 앞의 팔봉은 ‘달래강이 빚은 최고의 걸작’이란 평을 들어왔지만 허리가 잘린 후 남겨진 상처로 인해 지금은 ‘어색한 경관’을 하고 있다.
팔봉 칼바위 서글픈 사연 폭포수 되어 흐르고


'달래강의 걸작' 인간 탐욕으로 크게 훼손 
싯계 마을도 개발 후유증 큰 상처로 남아


김성식 생태전문기자 <프리랜서>
이상덕기자

괴산 불정(목도)에서 낙동강 수계의 안동 하회마을을 연상시키며 한바탕 요란하게 굽이친 달래강은 불정의 끝동네인 지문리에서 계곡 안으로 꼬리를 감췄다 다시 물머리를 일으켜 고개를 내미는데 그곳이 충주시 이류면 문주리 수주마을이다. 수주란 물가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목도에서 충주로 이어지는 한터고개를 통해 문주리 수주마을을 찾아들어가니 중부내륙고속도로 아래로 먼저 와 있는 물길이 햇빛에 반짝이며 다시 반긴다. 사흘전 내린 비로 물빛은 비록 탁하지만 도시 오염원에 찌든 물빛과는 전혀 다르다. 이곳 수주마을부터 팔봉, 싯계, 향산리로 이어지는 달래강 하류는 충주시민들의 젖줄로 이용되는 상수원 보호구역이다.


 물가에 커다랗게 세워진 상수원보호구역 안내판이 마치 경고판처럼 무겁게 막아선다. 하지만 둑방길을 따라 조성된 수주마을 앞의 야생화도로가 인심좋은 수주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하는 양 온통 쑥부쟁이 꽃망울을 터트려 분위기를 바꾼다. 쑥부쟁이 화단 옆을 지나는 주민에게 물으니 “지금이야 수주 마을 옆으로 고속도로가 지나고 마을 진입로도 포장도로로 바뀌었지만 6.25전쟁 때만 해도 피난민들이 수없이 들이닥쳤던 두메 중의 두메산골이었다”고 ‘멀지 않은 옛날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주마을을 지나면 마을 앞에 여덟 봉우리가 있다하여 붙여진 팔봉마을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수주와 팔봉 마을을 합쳐 흔히 수주팔봉으로 부른다. 수주팔봉은 문주리를 대표하는 두 중심 마을이다.
 팔봉마을에 들어서니 왼쪽 마을 안으로 사액서원의 하나인 팔봉서원이 마을의 오랜 역사를 대변하고 서 있고, 마을앞 하천 건너에는 한 눈에도 어색한 폭포수 하나가 부자연스런 물소리를 내고 있다. 
 이유가 궁금했다. 해서 연유를 알아본 즉 아니나 다를까.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인공폭포(칼바위 폭포)란다. 내력을 알고나니 금새 앙칼진 물소리로 들린다.

‘자연’과 바꾼 농지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 왕답마을 앞의 농경지는 본래 달래강 지류인 석문동천의 최하류 유역이었으나 팔봉 산자락의 칼바위 중간을 끊어 물길을 튼 농지개간 사업이 있은 후 얻어진 ‘자연훼손의 결과물’이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일제감점기때 강 건너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 왕답마을 앞을 크게 우회해 달래강으로 흘러들던 석문동천 유역을 농지로 개간하기 위해 팔봉 산자락의 칼바위 중간을 끊은 후 1960년대까지 이모씨(작고)와 심모씨(〃) 등 여럿이서 이 사업에 매달렸으나 실패하고 결국 충주시에서 공사를 마무리해 약 7만평의 농지를 얻었다 한다. 한 마디로 물길을 틀어 논을 만든 것이다.


 기막힌 사연을 들어서인지 눈에 들어오는 주변 경관 모두가 서글퍼 보인다.
 해발 500m도 채 안 되는 야트막한 연봉이지만 여덟 봉우리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장관은 가히 ‘달래강이 빚은 최고의 걸작’이란 평을 받아왔던 팔봉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젠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송곳바위,중바위,칼바위 등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봉우리들도 풀이 죽어 있다. 사연을 알지 못했을 때 지나치면서 느꼈던 위용도, 신비로움도 크게 줄어들었다.


 그 위대한 자연도 사람의 탐욕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일까. 허리가 잘려진 칼바위 아래로 연신 쏟아지는 폭포수 소리가 아예 비명소리로 들릴 지경이다.
 15년 전 ‘금강 천리’ 물길 답사때 전북 진안의 상전면에서 보았던 육지속의 섬 죽도가 생각나 아찔하다. 그곳 역시 농경지 개발이란 미명 아래 40m나 되는 바위절벽이 졸지에 잘려진 채 흉물로 남아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하류로 내려가니 싯계마을이다. 싯계마을은 또 어떤 곳인가. 주변경관이 수려하고 자연 생태가 잘 보존돼 있어 충북도와 충주시로부터 ‘충북의 자연환경명소’로 지정된 곳이다.


 하지만 이곳도 심심하면(?) 터져나왔던 댐 건설 얘기와 최근 거론됐던 경부대운하 건설 계획안으로 주민들에게 심한 생채기를 안겨준 ‘비운의 땅’이다. 그 후유증이 얼마나 심한가는 현지 사진촬영 중인 취재팀을 보고 무조건 의심하며 꼬치꼬치 따져 묻던 주민들의 과민반응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싯계에 선 ‘달래강 시인’ 20여년 간 달래강에 얽힌 시를 써오고 있는 충주의 허의행 시인이 싯계 강변에 서서 ‘싯계’를 노래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달래강 시인’이라 자타가 인정하는 허의행시인을 싯계강변에서 만났다. ‘버들치 지느러미 물보라 치는 신 여울 새벽/ 마을은 목욕을 끝낸 아이처럼 신선하다/ 물비늘 고요히 빛나는 강위로/ 황홀한 드라이아이스 흰줄박이 두루미 한 마리/ 김연아처럼 물빛을 가르고 있다’
 “그 무엇보다 때 묻지 않은 강이라 마음에 들기 때문에 1980년대 중반 이후 20년 넘도록 달래강 시를 쓰고 있다”는 허 시인의 싯계 예찬이다.


 싯계 다음으로 발길이 닿는 곳이 향산리다. 향산리 입구서 충주의 진산(鎭山)이라는 대림산이 동쪽으로 가물가물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 달래강은 소리없이 지류인 설운천을 받아들인 후 이내 유주막 물굽이를 돌아 충주 시내쪽을 향하니 그 첫 동네가 단월동이다.


 단월동 초입에서 동행하던 허의행 시인이 갑자기 강 건너 서쪽 산자락을 가리킨다. 충주와 달래강이 낳은 조선 중기의 명장 임경업장군의 묘소가 있는 풍동(중풍) 뒷산이다. 묘소에서 바라보면 달래강이 훤히 보인단다. 과연 ‘충의와 문화의 고장 충주’다운 서기(瑞氣)가 느껴진다.
 달래강은 단월동 강수욕장을 지나면서 더욱 더 사람 냄새를 받아들인다.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놀이 공간으로서 옛 추억을 되살리는 하나의 명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달래강의 새 명소 ‘단월동 강수욕장’


 여름 휴가철을 맞아 강수욕장을 찾은 어린 아이들의 개구리 같은 몸짓과 싱그러운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강물이 흘러가는 북쪽을 바라보니 탄금대가  손에 잡힐 듯 아른거린다. 이젠 달래강으로서의 물길도 얼마 남지 않았음이리라. 지나온 3백리 물길이 주마등 속 필름이 되어 마구 마구 돌아간다.

아, 달래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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