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포퓰리즘
사법부의 포퓰리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30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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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사법의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법 60주년 기념식 축사를 뉴스를 통해 전해듣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쉽게 받아들일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 취지가 무엇일까를 의아해 하다가 나중엔 우리나라 권력의 최고 수반이 과연 그런 얘기를 입에 올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더구나 이날 기념식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과거 권위주의 체제하의 잘못된 판결에 대해 사법부를 대표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자리였다.

얼핏 보면 이날 행사는 사법부가 스스로의 과오를 참회하고 대통령이 그 취지에 맞게 일종의 훈계성 덕담을 한 아주 매끄러운 분위기로 연상된다. 대법원장이 박정희 체제에서 자행된 사법살인의 대표적 사례인 민족일보 조용수사건이나 인혁당 사건을 중심으로 '잘못된 판결'을 사과하겠다는 것은 사실 사법 포퓰리즘에 대한 뼈저린 자기반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날 대통령의 발언은 우선 민주주의 근간인 3권분리 원칙에도 벗어난다. 그리고 문제의 핵심은 우리나라 사법부에 그런 포퓰리즘이 존재하느냐가 아니고 누가 이를 만들고 부추기느냐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법부 포퓰리즘의 최대 수혜자는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이 나라 최고 권력자였고 그 포퓰리즘을 촉발시킨 원인 제공자도 바로 이들이다. 때문에 사법부의 포퓰리즘을 탓하기 전에 먼저 국민의 지탄을 받아야 할 것은 권력의 무서운 전횡과 권위주의다. 시대를 불문하고 법관이 일반 국민의 평균적인 수준과 상식을 근거로 합리적인 법리를 해석해 판결했다면 이런 단어는 처음부터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판결을 못하게 한 것은 따로 있다. 얼치기 대통령제에서 넘쳐났던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이번에 사법부의 사과를 받은 사건들은 모두 이런 맥락에서 저질러졌다.

방향은 다소 빗나가지만 근래 들어 '법의 정의'를 가장 헷갈리게 한 사건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명언을 남긴 1994년 전두환 노태우 고소사건이었다.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된 전두환 노태우에 대해 당시 검찰은 "5·18 진압 등 일련의 행위는 헌법질서를 바꾸는 고도의 정치행위로서 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지었다. 이런 논리라면 쿠데타는 합법이고 국민의 저항권은 무조건 불법이 된다.

더 황당한 것은 나중에 이 사건에 대해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고 판결한 사법부가 이를 사법 60년사에 길이 남을 명판결로 기록하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 법의 잣대가 이처럼 왔다갔다 한 이유도 궁금하지만. 그 자체가 포퓰리즘의 전형이라면 부인하겠는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금언을 남긴 당시 서울지검 공안 1부장 장윤석 검사가 현재 집권당의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컬 하다.

일반 국민들은 사법 포퓰리즘을 아주 쉬운데서 찾는다. 평범한 시민들이 법을 어길 때와 재벌과 권력자가 법을 어길 때의 잣대가 서로 다른 것이 우선 못마땅하다. 이 대통령이 취임 100일 만에 정치인과 기업인들을 우르르 사면했으니 말이다.

또 있다. 아무리 정권의 권위를 곧추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위현장에서 얼굴을 가리는 복면행위를 처벌하고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들까지 잡아들이겠다고 벼르던 것에 엄청난 좌절감을 느꼈다. 국민들은 이런 발상이야말로 희대의 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이번 대통령의 발언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바로 이런 왜곡된 법치 논리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사법 포퓰리즘의 근절을 원한다면 방법은 딱 한가지다. 권력의 권위주의부터 청산해야 한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가 사회전반을 규제하고 더 나아가 국가 정책마저 조변석개로 흔들리게 한다면 대한민국의 사법 포퓰리즘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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