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괴강에서 달래강으로
<18> 괴강에서 달래강으로
  • 김성식 기자
  • 승인 2008.09.24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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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강의 숨결

‘달래강의 화회마을’  괴산 목도지역의 가호리에서 달개들~잉어수~하문리~지문리로 이어지는 역S자형의 커다란 물굽이가 가히 ‘달래강의 하회마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기막히다. 사진은 인근 월출봉 정상에서 바라본 달래강 전경.

목도∼지문리 물굽이'달래강의 하회마을'

잉어 뛰놀던 바위 옆에는 '잉어수 마을' 자리  
김영수씨 "달래강 설화 배경지는 목도" 주장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
이상덕기자

목도(괴산군 불정면 소재지)를 지나는 달래강의 느낌이 전에 비해 다르다. 남한강과의 합류지점인 하류가 얼마 남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이곳 향토사학자 김영수씨(74)로부터 전해들은 소금배와 목도나루에 얽힌 이야기 때문이리라. 강폭은 훨씬 더 넓어보이고 물빛도 더욱 푸르러 보인다. 여울 역시 더욱 힘차게 몸짓하며 예전 뱃꾼들의 노랫소릴 금방이라도 토해낼 것 같이 재잘댄다.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이 물줄기를 타고 22자(尺)나 되는 소금배가 오르내렸다는 게 어디 가당하기나 한 얘기련만 김씨의 기억 속에선 여전히 살아있는 추억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으니 이를 두고 격세지감이라 하던가.

"제 나이 대여섯살 때입니다. 아버지가 콩자루를 어깨에 메주면 그걸 가지고 와서 소금과 바꿔가던 생각이 엊그제 같습니다. 예전엔 가호마을 강변(지금의 목도시장 옆)에 목도나루와 물물교환 장소가 있어 그곳서 곡식과 소금, 생선 등을 거래했지요."

김씨의 아련한 추억을 뒤로 하고 목도(가호)를 지난 강물은 왼쪽으로 '달개들'을 거친다. 달개들은 목도와 음성천 건너 마을인 하산리 사이에 펼쳐진 넓은 들판을 말하는데 멀리 동쪽의 박달산에 해가 솟아오르면 가장 먼저 이곳 들판을 비추는 등 풍부한 일조량과 비옥한 토질로 각종 농산물이 생산되는 '달래강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다.

달래강의 풍요로움 괴산 감물의 이담저수지 아래에 연출된 벼아트. 괴산군농업기술센터가 친환경농업을 선도하는 청정괴산의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 유색벼를 이용해 연출한 농악(상모)놀이 장면. 벌판과 산자락이 만나는 곳에 달래강이 흐르고 있다.


달개들 옆에서 음성천과 합류한 달래강은 다시 오른쪽으로 물머리를 틀어 감물면 이담(鯉潭) 마을을 향하는데 이담의 원 이름인 '잉어수'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내 들어선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마을자랑비가 내력을 소개하며 반기고 있다. 그 내용인 즉 본래는 잉어소였는데 잉어수로 바뀌었단다. 잉어수란 강 한가운데 서있는 잉어바위 아래로 항상 잉어떼가 모여들어 장관을 이뤘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순흥안씨(順興安氏) 집성촌인 이 마을 안쪽에는 계담서원이 자리하고 있어 지금도 예와 시서풍류(詩書風流)를 숭상하는 이들의 수양처가 되고 있다.

잉어수를 지난 강물은 또다시 왼쪽으로 크게 방향을 틀어 감물면 하문리를 지나 지문리에서 계곡안으로 꼬리를 감추는데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해서 강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인근의 월출봉 정상을 올랐다.

월출봉은 괴산군 감물면 율리, 속칭 아시리 마을의 뒷산으로 얼마 전 산 중턱까지 벌목을 한 상태여서 한 길 넘게 자란 풀과 잔 나무들이 길을 가려 오르는데 무진 애를 먹어야 했다. 동행한 김영식씨(괴산향토사연구회)와 한 시간 가량 땀범벅을 한 후에야 비로소 정상에 도착했는데 정작 보여야할 강줄기가 보이지 않는다. 속 타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헤맨 끝에 벼랑에 매달린 커다란 소나무를 찾아 꼭대기에 올랐더니 금새 눈이 휘둥그레진다. 탁 트인 시야로 한눈에 들어오는 물굽이가 말 그대로 장관이다. 한 여름 뙤약볕에 땀 흘린 보람이 있다.

목도 가호리에서 달개들∼잉어수∼하문리∼지문리로 이어지는 역S자형의 커다란 물굽이가 가히 '달래강의 하회마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기막히다. 김영식씨 또한 감탄사를 연발하며 달래강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냈다고 뿌듯해 한다.

경부대운하 노선이 계획됐던 배너미(舟越) 마을의 입구 전경.


'한 건' 했다는 마음에서인지 하산길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아시리에 들려 길안내를 해줬던 노인장에게 인사를 한 후 마을밖을 나서니 오른쪽으로 '주월리'란 안내판이 보인다. 얼핏 보아 '배(舟)'와 관련이 있는 마을 같아 김영식씨에게 물으니 "배가 넘어다니는 마을, 혹은 훗날 배가 넘어다닐 마을이란 뜻으로 '배너미'라 한 것이 한자로 주월리(舟越里)가 됐다"고 한다. 지명에 얽힌 선조들의 놀라운 선견지명을 이곳에서도 또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왜냐면 이 일대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경부대운하' 노선이 계획되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달래강과 낙동강 수계를 잇는 최단거리가 바로 이곳 주월리 부근이란다. 실제로 지도를 보면 주월리 너머가 장연이요, 장연 너머가 바로 조령관문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 일대(하문리,주월리 일대)가 겉으로만 중단됐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칭 달천댐의 제1 예정지란 점에서 대청댐 인근의 '무너미 고개'를 연상시킨다. 댐이 건설될 경우 넘나들 것이 '물'이 아닌 '배'란 것만 다를 뿐 상황은 똑같다. 섬뜩하다.

자연이 빚은 기막힌 절경과 선조들의 기막힌 선견지명을 동시에 확인한 아시리와 주월리를 뒤로 하고 찾아간 곳이 '괴산의 끝동네' 지문리다. 예전에 한지(韓紙)를 만들었다는 이 마을은 마을앞의 조곡교를 사이에 두고 강 건너 동쪽으로는 괴산군 장연면 조곡리와 경계를, 하류인 북쪽으로는 충주시 이류면 문주리와 경계를 이루는데 하류쪽으로는 커다란 계곡이 막아서고 있어 더 이상 강줄기를 따라가긴 불가능하다.

강가로 나 있다는 벼랑길을 포기하고 한터고개(목도∼충주간)를 통해 문주리 수주 팔봉으로 들어가려고 되돌아 나오는데 동행한 김영수씨(향토사학자)가 돌연 중요한 의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달래강 이름을 낳은 '달래강 설화'의 배경지가 모두들 충주지역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괴산 관내의 목도지역 설화란 얘기다. 김씨는 "충주지역의 경우 예전엔 대부분 허허벌판이었기 때문에 설화에 나오는 '달래고개' 등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이 많다"며 "따라서 강과 함께 고개,산길 등 설화에 나오는 여러 조건을 갖춘 목도지역이 달래강 설화의 배경지로 봐야하고 나아가 달래강 혹은 달천의 기점도 훨씬 상류쪽인 목도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계담서원

'달래나 ××'로 유명한 달래강 설화는 문헌설화가 아닌 구전설화란 점에서 그 배경지가 뚜렷하지 않고 또 전국적으로도 여러 형태의 달래강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는 점으로 미뤄보아 김씨의 주장이 전혀 일리가 없지는 않은 듯하다. 또한 목도지역 하류로는 주민들도 괴강이 아닌 '달래강' 혹은 '달천'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 것도 어느 정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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