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야구와 처음처럼
부산 야구와 처음처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1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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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부산을 연고로 하는 롯데 자이언츠가 열광적인 팬들의 호응대로 '가을'에도 야구를 할 수 있게 됐다. 찢어진 신문지와 '부산갈매기'의 합창이 사직구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광적인 부산 팬들의 기대는 공교롭게도 제이 로스터라는 용병감독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믿는 눈치다.

야구 이야기를 꺼냈으나 정작 이 가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한 야구에 대한 것은 아니다.

야구는 공수를 교대하며 9회까지 경기가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선수들의 기량만이 단순한 잣대로 적용될 수 없는 변수가 많은 경기여서 어떤 경기는 관전하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적어도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 야구경기장을 들썩거렸던 봉황대기며 황금사자기 등 고교야구의 전성기에 그랬고, 프로야구가 이 땅에 처음 선보이던 시기에도 그런 긴장감은 유지됐다.

그러나 불혹을 넘기면서 자연스럽게 체화되고만 '보수'로의 어쩔 수 없는 회귀 탓인가.

어느새 이제 야구는 그 지리한 과정에서의 살뜰함보다는 그저 스코어와 결과만을 알면 그만이라는 정보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이런 심정이 모든 동세대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야구의 묘미에 열광하는 골수 팬들은 세시간쯤은 아낌없이 바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고, 그런 시간을 상당히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를 애석하게 하는 것은 '야구'라는 대상에 대해 처음과 끝의 일관된 관전 자세를 유지할 수 없이 그저 결과 혹은 나와의 연고성을 따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다 이처럼 속물근성을 띠게 되었는지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처음과 그 초심을 잃지 않는 과정의 경건함, 그리고 그에 따른 (성패 여부를 떠난) 결과에 대한 만족감은 이제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인가.

신영복 교수의 '처음처럼'이 다시 화제에 올랐다. 서울의 어떤 경찰서에서 그의 멋들어진 글씨를 현액하려다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어쩐지 썩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처음처럼'을 현판으로 하겠다는 의도는 어쩌면 순수로의 지향이라는 지극히 맑은 생각의 발로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본디 '처음'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고민하며, 새롭게 희망을 가지고 시작한다는 경건함은 말이 그렇지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하물며 기존의 관행과 폐단을 과감하게 떨쳐 버리고 새로운 각오로 다시 '처음'을 다짐하는 일은 더 더욱 만만한 일이 아니다.

히딩크가 그랬고, 제리 로스터 역시 과감한 환골탈태를 통한 '처음'으로의 반추와 '처음처럼'이라는 경건함으로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둔 것이 아닌가.

밤 하늘엔 추석 달이 기울어가고 있다.

아니 그 달은 기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차고 기울고, 다시 차면 또 다시 기우는 달의 모습에서 우리는 다시 '처음처럼'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하여 히딩크가 기존의 관행을 다 저버리고 흙 속의 진주를 찾아내는 또 다른 '처음처럼'을 실천한 것처럼, 제리 로이스터가 아무런 연고도 사전 지식과 정보도 없는 한국 땅 롯데 자이언츠를 만나 더욱 큰 힘으로 신명나는 야구를 펼치는 것조차 '처음처럼'의 색다른 인식이 아닐까.

그저 결과만을 중시하며, 사정없는 목표 지향성의 굴레에서 쳇바퀴 도는 일상을 다시 한 번 '처음처럼' 되돌아 볼 일이다.

추석이 지났음에도 머뭇거리는 더위는 그보다 더 힘들었던 시절, 그 '처음처럼'을 생각하며 견뎌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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