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 문백전선 이상있다
303.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18 22: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궁보무사<618>
글 리징 이 상 훈

"내일 저녁까지 금화 여섯개를 마련해 놓으시오"

왜냐하면 장산은 자기 아내가 기껏해야 금화 세 개 정도를 사채로 빌려 썼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원금도 아닌 이자로 금화 다섯 개를 달라니.

"허! 왜 그리 놀라시나 이렇게 놀라시려면 내 돈을 아예 쓰시지 말았어야지."

뚱뚱한 사내는 여전히 거만한 자세로 말했다.

"아니, 이자가 원금보다도 더 많은 경우가 어디 있나 이 놈! 어디서 감히 못된 수작을!"

장산은 화를 크게 내며 허리에 찬 장검에 손을 갖다 대려고 하였다.

"장산 나리! 나리는 사채를 생전 써보지도 않았수 왕비님을 모시는 사람은 뭐 사채를 쓰고나서 안 갚아도 된다는 법 있수 난 돈 빌려줄 때 약정해 놓은 증서를 갖고 있단 말이요!"

이렇게 말하며 뚱뚱한 사내는 장산을 다시 비웃듯이 똑바로 째려보았다. 지금 그의 표정으로 보건대 '네까짓 놈이 왕비님을 모시고 있으면 있었지 내 돈과 이자를 안 주고서 어디 배기겠느냐'하며 은근히 깔보는 듯 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장산은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보아하니 이놈은 지금 나 장산이가 궁 안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아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금 이렇게까지 겁 없이 구는 것은 뭔가 크게 믿는 구석이 단단히 있는 건 아닐까 곧이어 살찐 그의 입에서 장산이 궁금해 하던 말이 튀어나왔다.

"자! 어서 빨리 이자 내놓으셔! 나 지금 매성 대신님 댁에 들려봐야만 하오. 매성 대신님의 작은 아드님 생일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내가 인사라도 드려야 하지 않겠소"

뚱뚱한 사내는 이렇게 말하며 여유 있게 두 팔짱을 껴보였다. 장산은 그의 입에서 매성 대신의 얘기가 나오자 짐짓 놀라는 척 두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온화한 미소를 애써 지어보이며 천천히 말했다.

"보아하니 매성 대신님과 잘 아시는 분 같은데 이거 초면에 대단히 실례가 많았습니다. 제 불찰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아이고, 뭐 별 말씀을. 내 자랑은 아니지만이 아니지만서두. 매성 대신님하고 나하고는 진작부터 형님 아우해가며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이올시다. 험험험."

"잠깐 들어오시지요. 들어오셔서 술이라도 한 잔."

장산은 이렇게 말하며 그의 소매를 가볍게 잡아끌었다.

"아, 아니요. 난 급히 가봐야만 하오. 어쨌든 공은 공이요 사는 사인 것인즉, 무슨 수를 써서든 내 빚을 갚도록 하시오."

"아 그야 물론입지요. 그럼 수일 내에 다시 들리십시오. 제가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 그러시오. 그럼 내일 저녁에 내가 다시 찾아올 것인즉, 이자로 금화 여섯개를 필히 마련해 놓도록 하시오. 흠흠흠."

뚱뚱한 사내는 장산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자리를 떴다.

'저런 날강도 같은 놈 봤나! 아무리 더러운 돈놀이를 하는 놈이라지만 저럴 수가.'

장산은 이를 악물며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아이구! 여보! 대충 보아하니 당신 주머니가 완전 허당인 것 같은데, 이를 어쩌면 좋아요! 네 이제 우리 집안이 완전 거덜 나 버리게 생겼으니. 아이구!"

땅바닥에 주저앉아있던 그의 아내가 또다시 온몸을 비틀며 통곡했다.

"어휴! 이 빌어먹을 여편네야! 이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니 요 모양 요 꼴이 날 줄도 모르고 그 무서운 사채를 겁 없이 얻어다가 펑펑 퍼질러가며 써댔어"

장산은 이렇게 큰소리로 아내를 꾸짖어주고는 씩씩거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제 장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