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 문백전선 이상있다
299.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10 22: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궁보무사<614>
글 리징 이 상 훈

여자 옷차림을 하고 나타난 대정을 몰라보는 장산

아! 그런데. 그게 잘 될까 원래 얼굴 위에다 두꺼운 철판을 깔고 장사하는 것들이 고리사채업자일진대 내가 사정을 한다고 해서 말을 들어먹겠느냐고.

장산이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타고 온 말에서 내려 집 쪽으로 걸어가려할 때에 갑자기 어느 누가 앞을 딱 가로막아 섰다. 장산이 깜짝 놀라 거의 반사적으로 방어태세를 갖추며 상대를 바라보니 커다란 부채로 얼굴을 가린 화사한 비단 옷차림의 어느 젊은 여인이었다.

"저어, 말씀 좀 묻겠는데요. 저어."

여인은 몹시 수줍어하는 말투와 애교 있는 몸짓으로 장산에게 말을 걸어오자 장산은 일순 긴장감을 풀며 몹시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체 뭔 일인데 내 앞을 가로 막는가 나 지금 몹시 바쁜 사람이외다. 용건이 있으면 어서 빨리 말하시오."

"아이, 저어! 이런 말씀을 직접 드리기가 몹시 거북하고 민망스럽기는 한데. 저어, 혹시 이 근처에 제가 앉아서 적당히 볼일을 볼만한 장소는 없는지요."

여인이 계속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허! 남자야 똑바로 서서 바지만 까 내리면 보이는 곳이 죄다 뒷간으로 적당한 곳이요, 여자는 치마를 펼치고 주저앉으면 그곳이 바로 뒷간일진대 뭐가 걱정인가 바로 저 앞에 보이는 밭에 들어가 치마를 펼치고 쭈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는 척 하며 적당히 볼일을 보도록 하시오."

장산은 이렇게 말하며 그녀를 피해 가던 길을 재촉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 여인은 여전히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장산의 앞을 다시 가로 막아서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머!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씀을 하시면 어떻게 해요 저런 밭에 들어가 앉아 볼일을 보다가 벌레 한 마리가 그 좁은 틈을 비집고 재수 없이 쏙 기어들어오기라도 하면."

"어허! 제아무리 하찮은 미물이라 할지라도 어찌 저 죽을 줄도 모르고 뜨거운 물이 줄줄 흐르는 위험한 곳을 일부러 찾아서 들어갈까! 벌레가 기어들어 오는 것이 그렇게 겁나고 두렵다면 엄지손가락으로 병마개 막듯이 꼭 틀어막고 볼일을 보면 되지 않소"

장산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며 자기 앞을 딱 가로막고 선 여인을 피해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어머머! 보자보자하니 참말로 소리를 다 듣네! 그럼 댁은 날아가는 독수리가 그걸 보고 채가지 않도록 손으로 꼭 움켜쥐고 볼일을 보시나요"

여인이 자기 얼굴을 가린 부채를 살짝 거두며 화난 듯이 장산에게 소리쳤다.

"어, 어라 자, 자네는 대정!"

장산은 그제야 이 당돌한 여인이 여자 옷차림을 하고 있는 술친구 대정임을 알았다.

"자, 어때 나 그런대로 쓸 만한 암컷 같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대정이 천천히 부채질을 해대며 장산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 이봐! 대정! 백주 대낮에 지금 이게 무슨 꼴인가 이곳이 으슥한 술집 뒷방쯤 되는 줄로 아는가"

대정은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혹시 누가 이런 기막힌 꼴을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까 두려워 주위를 얼른 살펴보았다.

"하하하! 제법 쓸 만한 계집이 단골 술집에 새로 들어왔기에 내가 데리고서 걸쭉하게 일을 몇 판 치르고 난 다음, 그 옷을 돈 주고 사서 내가 한 번 입어 본 거라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