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대통령학(學)
이 시대의 대통령학(學)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0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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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국가 최고 지도자들이 요즘처럼 동시 다발적으로 토픽을 만들어 낸 적도 없었다. 미국은 차기 대통령 선거전으로 연일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고, 일본에선 총리가 20%대로 곤두박질한 지지율을 문제삼아 잔뜩 골을 부리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사임까지 해 버렸다.

그러가 하면, 한 때 청백리로 추앙받던 천수이볜 전 대만 총통은 졸지에 부패의 화신으로 전락, 정국을 소용돌이로 몰아 넣고 있으며 태국에선 전 현직 총리가 연일 국민들로부터 난도질을 당한다. 대통령직도 양이 안 차는지 육군참모총장까지 겸직하는 파키스탄 무샤라프의 독선은 그대로 우리의 7, 80년대 자화상을 오버랩시키며 숱한 뉴스거리를 만들어 낸다.

대통령은 신(神)만이 만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이 한 나라의 최고 리더를 뽑고 또 그에게 환호하며 때론 응징하는 모습은 흡사 동물의 세계와 똑같다. 단지 영장류라는 것 때문에 포장과 명분이 세련됐을 뿐, 동물적인 본능은 오십보 백보다.

무리를 이끄는 힘센 수컷 물개나, 백수의 왕 사자 역시 힘에 위압당한 다중의 선택으로 정점에 올라 한 시대를 풍미하지만 때가 되면 스스로 물러나거나 쫒겨난다. TV 프로 '동물의 왕국'이 인간에게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힘은 십중팔구 그 발산에 대한 끊임없는 유혹에 직면한다. 누구든지 따를 것이고 뭐든지 이룰 수 있다는, 때문에 후진국의 지도자일 수록 단정적이고 독단적인 언어를 남발하며 일거에 실행의 효과를 만끽하지만 그 약발은 오래 가지 못한다. 이는 과거 우리가 권위주의 정권을 이겨내며 뼈저리게 터득한 값진 교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늘 국민과의 대화를 갖는다. 촛불 시위 등 그동안 숱한 곡절을 거치며 대통령은 물론 국민까지 크게 상심했던 터라 이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때보다 크다.

차제에 두가지를 꼭 당부하고 싶다. 첫째는 이젠 더 이상 잃어버린 10년이니, 좌파 정권 10년이니 하는 이런 허접떼기 단어를 절대 입에 올리지 말라는 것이다. 아예 대통령의 칙령으로라도 이를 근절시키기를 바란다. 단언컨대 앞으로도 이런 10년 타령을 계속한다면 이명박 정부도 기대난망이다.

어차피 정권교체는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생명으로 한다. 노무현을 흉내내라고 국민들이 그렇게 전폭적인 지지로 이 대통령에게 정권교체를 안긴 것은 아니다. 이러한 뻔한 이치를 외면하고 과거에만 집착해서야 뭐가 되겠는가. 현 집권세력이 그렇게 자신이 없다면 10년 타령으로 면피를 할게 아니라 차라리 국민들에게 도와달라고 솔직하게 호소해라. 하찮은 초등학생들의 교우관계에서도 가장 못난 놈은 되나가나 남탓만 한다.

또 한가지는 이미 여론화됐지만 제발 정책에 있어 일관성을 가지라는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만도 그렇다. 한다 안한다를 왔다갔다 하면서 그런 식으로 쉽게 표변하는 것에 국민들은 정말 고통스러움을 느낀다. 나라를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할 정책이 국민적 저항에 부딪친다면 같이 머리를 맞대고 그 대안을 모색하거나 유보하는게 정상이다. 여론이 불리하다고 해서 슬그머니 발을 뺐다가 다시 뒷통수를 치는 처사는 통치의 대의가 아니다. 더 솔직한 바람은 대운하논란은 이젠 끝냈으면 한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미 이 문제에 대해 믿음을 잃었다.

영부인 김윤옥여사가 며칠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를 '입덧'의 과정이었다고 규정했다. 평소 온화한 이미지에 걸맞는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임산부가 입덧을 지나면 그때부턴 본격적인 태교에 들어간다. 클래식을 듣고 독서를 하며 명상을 생활화한다. 이 때 가장 금기시되는 것은 험한 장면과 험한 말이다. 태아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맞다! 지금 국민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누구를 잡아들이고 압수수색하고 상대에 대한 응징의 결기를 곧추세우는 시끄러운 리더십이 아니라 조용한, 그러면서도 당초 약속대로 서민들을 보듬는 믿음의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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