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145>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09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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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덕의 오버 더 실크로드
웅장한 성채·거대한 망루 옛 영광의 흔적 고스란히

바로크 양식 스포르체스코 성… 별모양 성곽·종탑 일품

레오나르도 다빈치 밀라노서 '최후의 만찬' 등 작품 활동


밀라노 시내를 진입하여 첫 방문지로 밀라노 북쪽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스포르체스코 성을 방문했다. 스포르체가문이 만든 성으로 웅장한 성채와 거대한 망루가 고대도시의 면모를 과시하듯 우뚝 서 있다. 성 앞 광장 분수대엔 시원하게 뿜어내는 물줄기 주변엔 연인들이 진한 포옹을 하고 있다. 별모양의 성곽과 종탑 등은 대표적인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다.

500여년 전에 만든 성체는 로마병사들이 만든 성곽의 벽돌을 가져다 쌓았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성벽에 조각된 용의 조각이 돋보인다. 용의 몸속에서 스포르체가문의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것을 상징하는 조각에 꼬리를 잘라낸 용의 조각상이 성벽에 붙어있다.

성곽 양쪽에 둥근 탑 2개를 세우고 운하를 회전시키는 기계장치를 계발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운하를 이곳까지 연결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모기가 많이 자라는 습지로 운하가 없어지고 메마른 수로만 남아있다.

롬바르디아의 주도 밀라노 시민들에게 계몽의 빛을 전해주려 피렌체에서 건너온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로도비코 스포르차의 총애를 받으며 그의 재능을 펼칠 수 있었다.

30세 때 로도비코궁전을 찾았지만 17년 후 로도비코의 몰락으로 밀라노를 떠나야 했다.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 도착한 후 흙과 싸우면서 엄청난 크기의 말 조각상을 만들어냈으며 기하학적 연구에 열중하면서 군사용 무기와 수력용 장비를 개발해 내기도 했다.

또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밀라노의 초원 구석까지 물을 공급하는 수리시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결국 롬바르디아 저 멀리 지평선까지 펼쳐지는 비옥한 평원과 푸른 녹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풍경으로 만들어준 주역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던 셈이다.

레오나르도는 긴 삶의 여정 동안 그림을 많이 남긴 편은 아니지만 산타마리아텔레그라치에 수도원에 그린 최후의 만찬은 불후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이 그림을 바탕으로 모르겐이 아름다운 판화를 제작하여 퍼뜨린 덕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인류를 대신해서 온갖 고통을 대신 짊어지려는 예수의 숭고한 정신을 그림으로 표현해내기 위해서 레오나르도는 최대한 간결한 구도를 택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가 그 순간에 말했던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하게 만드는 간결한 구도이다. 한결 같이 아름다워 보이는 제자들의 얼굴과 기품 있는 움직임은 예수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더욱더 부각시키고 있는 분위기다.

최후의 만찬이라는 주제를 그림으로 표현하도록 하늘에서 내린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그는 힘 있는 표현보다 기품을 중시했기 때문에 라파엘로보다 훨씬 품격 있는 그림을 그렸다. 또한 그는 명암효과를 적절히 사용해 화려한 색을 사용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자아냈고 그림자를 거의 완벽하게 활용하고 있다.

최후의 만찬이 그려진 시기는 1495년 모토르파노라는 평범한 화가가 산타마리아델라그라치에 수도원 식당 구석에 '두 도둑 사이에 못 박힌 예수'를 그렸다.

조카를 죽이고 밀라노의 공작이 된 로도비코는 레오나르도에게 그 그림의 좌우에 자신의 초상화와 아내와 자식들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해지지만 두 초상화는 상당히 유치한 수준이어서 레오나르도의 솜씨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수학자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프라 루카 파치올리는 레오나르도가 46세 때인 1498년에 최후의 만찬을 끝냈다는 소중한 증거를 글로써 남겨주었다.

최후의 만찬을 그리는 과정에서 그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콩트작가인 잠바티스타 친치오 지랄디(1504-1573)는 1554년 소설과 희곡작법에 대한 책을 발표했는데 이 책에서 레오나르도를 언급한 부분을 인용해 볼 수 있다. 극작가는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예를 따라만 한다. 이 위대한 화가는 인물을 그리려 할 때 가장 먼저 그 인물의 특징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예절바른 사람인가 야비한 사람인가, 외향적인 성격인가 내향적인 성격인가, 늙은 사람인가 젊은 사람인가, 공정한 사람인가 변덕스러운 사람인가, 심지어 격정에 싸인 순간인가 차분하고 평온한 순간인가도 생각해보았다.

이처럼 서두르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하나씩 결정한 후 비슷한 특징을 지닌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습관과 외모와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림의 대상에 어울릴 만한 조그만 특징을 찾아낼 때마다 그는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조금만 책자에 그 특징을 스케치했다. 이렇게 필요한 것을 찾아다니면서 충분한 자료를 수집했다고 생각할 때에야 그는 비로소 붓을 들었다.

세상일에 무척이나 호기심이 많았던 아버지는 레오나르도가 밀라노 마리아델라그라치에 수도원에 있는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에도 이런 방법을 사용했다고 귀가 따갑도록 지랄디에게 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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