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릴 10년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릴 10년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0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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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경선 막판엔 인신공격까지 주고 받으며 서로 갈데까지 갔던 오바마와 힐러리가 전당대회장에선 한 식구임을 과시했다. 미국에 대해 천한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도 이런 모습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결과에 승복하는 페어플레이, 비록 그것이 내키지 않는 전략적 선택이라 하더라도 상대를 인정하려는 그들의 '민주주의 학습'은 여전히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주민들이 나라를 세운 족보없는 국가지만 때가 되면 자연스런 정권교체를 이루며 세계를 호령하는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 같다.

어제 18대 첫 정기국회가 열렸지만 예상대로 여야의 지루하고 지난한 정쟁만 예고했다. 정치가 가뜩이나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을 갈라 놓으며 심란케 하는 판에 또 걱정만 하나 더 안기게 됐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사석에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국민 정서의 대립이 심각함을 피부로 느낀다. 보통 사람들까지도 둘로 딱 갈라지는 것이다. 현 정부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아예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이념적 선을 확 긋고서는 무조건 좋다거나 무조건 싫다는 논리를 강변한다. 한쪽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식의 살벌한 흑백논리가 판을 치는 것이다. 사람 둘만 모여도 서로 입장이 엇갈리고 이해가 상충되기 마련인데 이를 무시하고 국민 전체가 지금처럼 반목만을 키워간다면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현 집권세력이 주장하는 '좌파의 잃어버린 10년'도 참으로 황당하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이념상으로나 국가정책에 있어 우파면 우파였지 절대로 좌파가 아니다. 정부수립 이후 반세기 동안 득세한 수구, 독재 집권논리에 맞서 잠시 진보가 힘을 얻었다고 해서 좌파라고 규정한다면 강력한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던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더 좌파적이다. 한나라당이 좌파법안이라고 주장하며 손을 보겠다고 벼르는 사학법이나 집시법 그리고 아예 보수정권의 방패막이로 제·개정을 모색하는 집단소송법안 및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 등도 발상이 잘못됐다. 국민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이런 법안들을 지금처럼 합리적인 법치 논리가 아닌 좌파척결을 내세운 감정적인 접근으로 처리하려 한다면 그 부작용은 다시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 안게 된다. 시위현장에서 복면을 착용하는 것까지 처벌하겠다고 결기를 세우면 앞으로 어쩌자는 건가.

여 간첩 원정화 사건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실로 20여년만에 섬뜩함을 느꼈다. 그 기사와 함께 보도된 '군(軍) 내부에 간첩용의자 50여명의 명단이 있다'는 대목에 특히 눈길이 쏠린 것이다. 1950년대 미국에 광풍을 일으켰던 매카시즘도 그 출발은 "내가 공산주의자 명단을 가지고 있다"였다. 이 명단 때문에 숱한 사람들이 잡혀가고 얻어터지고 가정이 파탄났다. 70, 80년대까지 우리나라 시국사건에도 예외없이 나타난 것은 바로 이런 명단과 이를 줄줄이 엮은 도표였다.

결국 자신의 원죄 때문에 알콜중독과 객사로 생을 마감한 조지프 매카시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미국은 매카시를 희생양으로 '광기를 만드는 것보다 그 광기를 이용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뼈저린 가르침()을 얻어 지금의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원정화가 혹은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가 간첩활동을 하고 국가의 안위를 위협했다면 실정법에 따라 엄격히 처벌하면 된다. 우리가 경계하는 것은 바로 그것을 이용하려는 정권의 몰역사성이다. 현 집권세력이 이를 간과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주장하는 잃어버린 10년을 참담해 하기 전에 앞으로 잃어버릴 10년을 더 참혹한 심정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불교가 거리로 뛰쳐 나오는 상황이라면 현 정권에 대한 경고등은 확실하게 켜졌다. 종교의 현실정치 참여는 논리(論理)보다는 념(念)과 직관(直觀)의 발로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하다. 이것이 누적될 경우 그 결과는 현실과 실체를 뛰어 넘는 분출이다. 십자군 전쟁 등 세계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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