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8.2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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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교의 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김 익 교 <전 언론인>

활짝 개였습니다. 며칠만에 보는 하늘이 높고 파래지고 폭염을 뿜던 햇빛이 순해졌습니다.

이웃들이 서둘러 김장에 쓸 무우를 파종하고 배추심을 준비를 합니다. 한 일주일 사이 일거리가 바뀌고 먹거리가, 입을게 바꿔집니다.

엊그제 홀로 계신 어머니를 찾아 뵈었습니다. 일 핑계로 전화도 자주 못드려 늘상 마음에 걸렸던 어머님입니다. 여름을 나시느라 힘이 드셔서 인지 조금은 수척해지신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식당에서 점심을 자시면서도 연신 제앞으로 찬거리를 밀어 놓으십니다. 많이 먹으라고…. 목이 메었습니다. 밥값도 못냈습니다. 아니 낼 수가 없었습니다. 자식사랑으로 내시는 식대를 내 몫으로 우길 힘이 없었습니다.

'운전 잘하고 조심해서 가…." 뒷거울에 어머니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며 계속 비춰집니다. 참고 또 참았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데도 안 닦았습니다. 돌아가는 아들의 차가 안 보이도록 서 계시는 어머님도 눈가를 훔치셨을 겁니다.

이번 주말이 3년전 작고하신 아버님의 기일입니다. 집에서 한 모퉁이만 지나면 선영인데도 여름내 못 가 봤습니다. 그저 풀이 엄청날 것이라고 걱정만 했지 지척에서도 살펴 드리지를 못했습니다. 밭에 풀은 뽑아도….

막심하기 이를데 없는 불효자가 됐습니다. 스스로 부끄러운 자괴감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오늘은 늦었고 내일은 만사 제치고 예초작업을 해야겠습니다.

편지를 쓰는 동안 "비올지 모르니까 널어놓은 고추 걷어놔요." 외출한 아내의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 비가와 오기는… 걱정말어…." 퉁명스레 답을 하고 한참이 지났는데 밖이 소란한가 싶더니 장대비가 쏟아집니다. 튀다시피 나갔습니다만 늦었습니다. 집앞 길가에 비닐을 깔고 며칠을 공들여 말리던 고추가 결단이 났습니다. 젖었거나 말았거나 수습을 하는 동안 서슬퍼런 아내의 노기가 벌써부터 엄습합니다.

물에 빠진 생쥐꼴이 돼 들어오자마자 전화가 또… "여기 비오는데 거기는 비 안와요. 잘 걷어 놨지요"입 "어∼ 아니 고추 비 다 맞었어…" "에이 농담 마셔 비 맞출분이 아닌데 뭘, 잘 하셨어요" 아주 흡족해 했습니다. 처음 전화받고 바로 걷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제 한시간여만 지나면 아내가 돌아옵니다.

옛말에 '소낙비는 피해서 가라'고 빨리 편지 쓰고 아내가 오기전에 현장을 벗어나야 되는데 마음이 급하니 마감시간이 됐는데도 진도가 안 나가네요.

비가 그쳤습니다. 하늘 가득한 구름이 날을 일찍 저물게 합니다. 다시 멧비둘기가 울고 풀벌레 소리가 사방에 가득합니다.

가을입니다. 우중충한 날씨로 하늘 며칠 못본 사이 가을이 성큼 문지방을 넘었습니다. 환절기 몸조심 하시고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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