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마타하리 김수임 혐의, 음모 가능성"
"한국판 마타하리 김수임 혐의, 음모 가능성"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8.17 17: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화여전을 졸업한 미모의 인텔리 여성으로 영어에 능통, 이강국의 동거녀이자 미군 고문관과도 동거하면서 이강국을 숨겨줬다 월북시키는가 하면 각종 간첩활동을 하다 6.25직전 처형된 여간첩 사건."

한국 전쟁 직전 간첩 혐의로 처형된 당시 희대의 '한국판 마타하리' 김수임 사건은 한국 내에서는 이같이 기록돼 있지만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비밀해제된 문서들에는 그같은 혐의내용과 사실들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미 AP통신이 16일 서울발로 보도했다.

통신은 '비밀'로 분류돼 지난 1950년이후 냉전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잠자다 공개된 김수임에 대한 기록에서는 그녀가 동거했던 미육군 대령 존 베이드는 민감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었으며, 오히려 그녀가 애정을 가졌던 이강국은 북한에서 '미군 첩자'혐의로 김일성에 처형됐었다고 지적했다.

이 말은 김수임이 지금까지 미군의 정보를 빼내 북한의 애인 이강국에 건네는 등 이른바 한국판 마타하리 역할을 한 간첩사건으로 비쳐저 있지만 사실은 그녀가 아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히려 그녀가 애정을 가졌던 이강국이 미국 간첩으로 처형된 사실은 그같은 혐의를 반감시킨다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통신은 1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에는 김수임은 물고문, 전기고문 등 갖가지 고문에 못이겨 자백한 것이었으며, 그 내용도 당시 미군들이 언제 철수하는가 하는 것을 베어드 대령으로부터 들어 장래 해고상황을 걱정하던 동료 고용원들에게 전달한 것 뿐이었다며 간첩혐의가 무리한 것이었음을 열거하고 있다.

통신은 해방 당시 한국 내에서 미군물건 암시장의 단속과 파악을 전담했던 베어드 대령은 영어를 잘하는 김수임을 직원으로 고용했으며, 이내 그녀를 자신의 사무실에서 재우기도 하는 등 사실상 동거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아이를 낳았으며, 그 뒤 군사고문단이 임무를 맡으면서 그는 한국을 찾은 자신의 부인과 합류,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열거했다.

김수임은 이전에 벌써 이강국과 애정을 가진 사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베어드 대령은 당시 한국과 미국내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불던 시기, 그녀가 간첩혐의를 받으면서 재판을 받을 때 그녀를 위해 증언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것을 우려해서 인지 미국으로 돌아가버렸다고 통신은 지적했다.

통신은 이후에도 한국에서 간첩혐의로 처형된 여인과 스캔들 등으로 베어드 대령 역시 조사를 받을 수 있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같은 조사는 덮어졌고, 그에 대한 조사도 중단됐다고 전하면서 누가 왜 그 조사를 중단시켰는지는 알 수 없다고 의문점을 던졌다.

특히 하지 중장이 담당했던 사건 관련 증언에서 베어드 대령은 철군과 관련된 계획에 접근할 권한도 없었었으며, 반면 철군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은 당시 미군신문인 스타스 앤 스트라입스에 개괄적으로 보도되기도 했었던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왜 김수임이 그같은 간첩혐의로 처형됐을까를 설명하면서 통신은 당시 정치적인 히스테리와 공산주의를 두려워하던 정치권과 언론의 공포감 등이 어울어진 상태에서 좌파 단속과 10만여명의 좌파와 동조자를 처형했던 당시 상황을 열거했다.

또한 통신은 기록을 함께 찾은 정병주씨는 이를 두고 "그것은 마녀사냥이었다"고 규정한 언급을 전하면서 "당시 남한 경찰과 검사들은 그녀가 이강국의 애인이었으며, 동시에 미군 대령의 애인으로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었지만 그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렸었다"고 한 말을 전했다.

통신은 당시 베어드 대령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김원일씨(59)로 현재 캘리포니아주내 라시에라 대학신학 교수로 재직중이나 그는 어머니에 관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사실과 거짓을 구분해가면서 어려운 여정을 걸어왔다고 전하고, 그는 이 비밀문서가 해제되자 가장 먼저 기록을 발견한 사람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김원일씨는 현재 이를 영화화 하려는 한국의 조명화 감독과 함께 사실 규명작업을 하고 있으며, 조씨는 이와 관련해 "베어드 대령은 김수임씨를 배반했다"면서 "그는 그녀를 살릴 수 있는 고위직 군인이었으나 그냥 미국의 자신의 가족에게 돌아가 버렸다"고 말했다.

통신이 밝힌 기록에 의하면 김수임은 지난 1911년생으로 고아로 자라 이화여전을 졸업한 재원으로, 1936년 당시로서는 드문 여성 행정관리이기도 했고, 신세대 젊은 여성을 위한 잡지에 소개돼 유명세를 타기도 했었으며, 모윤숙씨와도 가까웠었다고 적었다.

그녀는 1941년 유부남인 이강국과 만나 그의 연인이 됐으나 그는 좌파주의자로 이후 월북, 북한 중앙인민위원회 고위직을 지내기도 했었다.

그녀는 유창한 영어 덕에 당시 59세였던 베어드 대령의 눈에 띄어 고용됐으며, 결국 그와 동거하는 사이가 됐었다.

지난 1956년 작성된 미 육군 극비자료 프로필에는 이강국은 CIA에 의해 '합동작전위원회'(JACK)에 고용됐었으며, 실제 지난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직전에 '미군 첩자'로 북한에서 처형됐다고 적혀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그러나 이강국이 실제 미군과 연결돼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최근 AP통신은 한반도 내에서 한국전쟁 시기를 앞둔 시기 발생했던 여러가지 사실을 토대로 실사료 발굴을 통한 진실규명 보도를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 사건 등을 보도하기도 했으나 당시 인민군에 의한 처절한 양민학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도 받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