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편안한
그, 편안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8.13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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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김 윤 재 <수필가>

21년 된 주택은 잔병치례가 잦다.

치매 걸린 노인처럼 목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가 예고도 없이 발병을 하여 당황스럽게 한다. 가을이면 빛바랜 페인트얼룩을 보여주고, 봄이면 북쪽 방에 결로 현상을 일으켜 심기를 건드린다.

지난여름엔 신고도 없이 수도관이 터져 애를 먹였다. 어디서 문제를 일으켰는지 쉽게 발견하지 못해 거실, 서재, 주방이 상처를 입었다. 공사를 하며 겪는 불편은 환자를 돌보는 것처럼 힘겹다. 그렇다고 아파트처럼 가격이 올라 경제적 보상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물론 경제적 이익을 노리고 주택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집은 편안한 안식처인 동시에 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는 공간이며, 내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난 생가는 고향과도 같은 씨눈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사랑한 집이다. 아이들의 알레르기 치료를 위해 정성을 다해 지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건강히 자랐고 모두 자신의 성지로 떠났다. 오래된 집엔 오래된 부부만 살고 있다.

서로 함께 하면 닮는다고 했던가. 나도 주택처럼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 병원을 놀이터처럼 드나든다. 병원을 드나들다보니 낡은 주택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해하려드니 다시 애정이 생겼다. 오래된 주택은 초봄이 되면 명자, 산수유, 제비꽃, 튜울립을 피워대며 나를 유혹한다. 충만한 유혹이다. 명자나무 새순과 제비꽃 묵은 잎을 손질하다보면 어느새 연산홍과 철쭉이 고개를 내민다.

그와 때 맞춰 묶은 잔디를 깎아 줘야하고, 버팀목에 장미나무새순을 묶어준다. 이때는 잡풀도 사랑스럽다. 사월이 되면 뽑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뽑지 않는다. 잡풀의 아름다움은 초봄이 전성기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사람들 눈에 뜨이고 싶으면 질기디질긴 잔디뿌리를 밀쳐 내고 고개를 내밀었을까.

그 뿐만이 아니다. 오래된 정원엔 상추, 쑥갓, 풋고추가 자란다. 개미, 굼벵이, 거미, 지렁이도 살아간다. 이들이 사는 모습을 통해 나는 자연의 무한성에 감동한다. 씨앗 자체로 있으면 한 알의 씨앗 그대로지만, 땅에 심겨져 자연과 만나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에너지를 확산시켜 유익과 감동을 준다. 내가 그들에게 해주는 일이란 씨앗이 흙과 만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미 자연이 된 그들은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다. 비가 내려 온 몸이 사그러들면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여름 가뭄에 입술이 타들어가도 공동체의 지체를 해치지 않는다.

생명력 넘치는 그곳에서 나는 아이들과 김밥을 먹었고 이웃을 초대해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손톱에 봉선화꽃물을 들이며 딸아이의 초경에 대해 설명했고, 쩍 갈라진 석류를 가지고 성교육을 시켰다.

뿐만 아니다. 외출을 하려고 현관문을 열다보면 낮 모르는 손이 석류를 따기 위해 담을 넘어서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얼른 문을 닫고 그 이웃의 손이 목표물을 따들고 멀리 사라질 때까지 서 있다 나가곤 한다. 참으로 나만이 즐길 수 있는 기쁨이다. 잘 익은 석류를 보고 한 개쯤 갖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그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언제부턴가 나는 잘 정돈된 거실이나 안방보다 정원에 있을 때 행복하다. 전지를 하고 풀을 뽑는 작은 일이지만 내가 돌볼 수 있다는게 고맙다. 그것은 어린시절 살았던 기와집 다락방이나 뒤꼍 툇마루 같은 편안함이다. 컴컴한 다락에서 수수께끼 풀어가듯 잡동사니를 꺼내보는 맛이 있는 것이다.

오래된 것은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편안하다. 흠집이 날까 조심하지 않아 좋고, 손에 익숙해 낯설지 않다. 누구의 제지나 법에 매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자유로움이다. 그래서 나는 잔병치례 잦은 주택을 처분하고 아파트로 이사 가야지 노래를 부르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 품속 같이 편안한 이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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