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석(七夕)과 일본인 노부부의 사랑
칠석(七夕)과 일본인 노부부의 사랑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8.08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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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규 량 <충주대 노인보건복지학과 교수>

오늘은 일본 한 노부부의 애절한 사랑을 소개하려 한다.

8월7일은 견우직녀가 1년에 단 한번 만난다는 음력 7월7일인 칠석(七夕)이다. 우리나라는 칠석날 행사가 그다지 빈번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으나 일본은 칠석에 대한 의미부여를 영원한 사랑 이상으로 확대 재해석한다.

큰 건물이나 상점가 현관에는 잎이 달린 커다란 대나무 가지를 잘라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세워놓고 종이리본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는다. 그 종이리본은 각 개인의 소망이 적혀 달려있는데 칠석 전에 장식해 두었다가 칠석이 지나면 말라버린 대나무가지와 함께 태워 소망을 태워 보낸다는 의식을 행한다. 그 소망들 중에 으뜸은 무엇보다도 사랑이다.

사랑에는 여러 유형의 사랑이 있겠으나 어찌됐든 사랑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한 엔돌핀 호르몬 효과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꿈꾸며 사는 게 인간인지도 모른다. 견우와 직녀처럼 일년에 한번 만났다 헤어질지라도 그 사랑은 영원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랑을 행하기란 실로 쉽지 않은 모양이다. 견우와 직녀의 시절도 아닌 요즘 세속적 유혹이 많은 시대에 일년에 한번 만나 그 사랑 지속될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필자의 일본 유학시절 다리를 다쳐 꼼짝을 못할 때 도시락을 싸서 날라 주었던 나의 은인(그 후로 나의 일본인 어머니가 됐음)이 암 투병 중이어서 일본에 갔다 어제 귀국했다.

이들 노부부를 만나 견우와 직녀의 사랑을 되새길 수 있었다. 70이 넘던 할머니가 40도 안되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변했다. 더구나 수술 후유증으로 한쪽 눈은 실명, 남은 한쪽 눈은 백내장으로 얼굴 표정은 목각인형처럼 굳어 있었다. 가슴이 울컥했다. 오드리햇번처럼 눈이 부신 미인이었는데 미소가 사라진 싸늘한 얼굴표정이 나를 차갑게 만들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저녁시간대에 한시간만 허락하는 면회시간에 80세가 넘은 할아버지가 매일같이 출근을 한다.

그냥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한 손엔 지팡이, 한 손엔 손수 만든 도시락을 들고 할머니를 위해 절뚝거리며 나타난다.

금방 지은 따끈따끈한 밥, 그녀가 좋아하는 된장국, 생선찜, 야채샐러드, 다꾸앙 (단무지) 등이 그녀의 생명줄을 연명해 주고 있는 듯했다. 병원 밥이 맛이 없어 먹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매일 새 밥과 새 반찬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는 할아버지 역시 4년째 대상포진을 앓고 있는 환자이다. 아직은 지팡이를 짚고라도 거동할 수 있기에 할머니를 위해 따뜻한 밥으로 사랑을 전하고 있다. 가슴 뭉클한 사랑이 실려와 감동의 전율이 온몸을 짜릿하게 하는 순간 같이 갔던 아들녀석이 분위기를 깼다. "엄만 나중에 늙어서 아프지마!"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무리 할아버지로부터 극진하게 사랑받는 저 모습이 아름다워 보일지언정 난 늙어서 저렇게는 사랑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던 순간이었지만 철없이 내뱉는 아들의 말이 얄미웠다.

몸도 성치 않은데 "매일 도시락 만드느라 힘이 안 드느냐"고 묻자 "안 아플 때만 내 아내이고, 아프면 내 아내가 아니냐"라고 답을 하면서 "내가 대상포진으로 진통제를 맞을 정도로 아픈데 내 아내는 얼마나 더 아프겠냐"하면서 눈물을 비쳤다.

순간 나도 눈물이 왈칵했다.(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눈물이 쏟아진다.) 이때 해외 로밍해간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마침 할아버지가 남편의 안부를 묻는 순간이었다. 남편으로부터 걸려온 국제 전화였다. 덕분에 이들 노부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현지에서 전할 수 있었기에 사랑전달의 플러스 알파효과가 있었으리라.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에 일본의 젊은 남녀 청춘들은 전통 기모노를 입고 칠월칠석의 기분을 내느라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짜증날 정도의 더위를 그들의 사랑의 온도에 비하면 서늘한 것임을 알았다. 이들의 사랑이 견우직녀처럼 지속될 때 노부부의 사랑처럼 실행되리라 생각되는 칠석의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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